‘불보살은 어디서 오셨는가’
모든 이의 안녕과 행복위해 축원


우리는 커다란 그물로 연결돼
그물코 흔들면 전체가 흔들려
중생 낱낱 구제위한 방편 펴야

③ 원아속도일체중(願我速度一切衆)  한량없는 모든 중생 어서 빨리 건져지이다.

부처님의 눈, 지혜의 눈을 얻고 나면 세상은 너와 나라는 차별이 무너지고,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세상이 열리고, 세계일화(世界一華)의 꽃이 핀다. 따라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법계의 일체중생을 하루 속히 구원할 수 있게 하여 주십사하는 자비의 대서원을 세우게 된다.

나처럼 고통의 바다에 빠진 중생들의 고통을 그냥 볼 수 없으니 제도(濟度)하고자 원하는 것이다. 

그 마음에는 미운 사람도, 원수도 없다. 오로지 고통 받는 안타까운 이웃만 있을 뿐이다. 이 이웃을 구하지 않으면 나도 편안할 수가 없다. 이웃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근본정신이다. 

따라서 설령 이웃이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모함하고 해를 끼치더라도 ‘모든 이웃을 어서 빨리 건지게 하소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님의 이 서원은 오롯이 우리의 서원으로 이어져야 한다.

절에 와서 내 자식, 내 가족의 행복만 기원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이웃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축원해야 할 것이다. 이웃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들이 이 이웃과 나를 하나로 보지 못하는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것임을 확연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마치 커다란 그물처럼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그물코를 흔들면 그물 전체가 흔들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하듯이 이웃이 행복해야 사회가 안정을 찾고, 나라가 번영하고, 나아가 세계가 번영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④ 원아조득선방편(願我早得善方便)  팔만사천 좋은 방편 어서 빨리 얻어지이다.

‘이 사바세계의 일체중생을 제도하고자 하오니 훌륭한 방편을 하루 빨리 얻게 하여 주소서’ 하는 것이다.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방편이 필요하다. 중생들의 모습이 제각각이니 그 낱낱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중생이 처한 환경에 맞는 방편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된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보듯이 관세음보살님은 응신(應身)의 방편을 펼치셨다. 

부처님의 진리에 목마른 사람에게는 진리를 전하는 법사의 모습으로, 굶주린 사람에게는 무상급식을 베푸는 사람으로, 힘없고 억울한 사람에게는 인권변호사로,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장학금을 후원하고, 길 잃은 사람에게는 길을 찾아주고, 마음 아픈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하고, 외로운 노인에게는 말벗이 되어주며 소년소녀가장에게는 학업과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은혜를 베푸는 등등의 모습이 바로 응신의 방편이다. 

이 모든 방편은 나의 이익을 바라는 것이 아니며 나의 만족이 아니라 중생의 만족이어야 하므로 나를 내려놓은 무주상(無住相)이어야 한다. 그 무주상의 방편은 곧 반야선(般若船), 지혜의 배에 올라타야 나온다.

[불교신문3631호/2020년11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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