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서야 나는 문득 꽃을 보네
네가 떠난 뒤에 비로소 널 만났듯
향기만 남은 하루가 천년 같은 이 봄날

- 민병도 시 ‘낙화(洛花)’ 전문



민병도 시인은 1953년 경북 청도에서 출생했다. 1973년 봄날 이영도 시인의 시조를 접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후로 시조시인의 길을 반세기 가깝게 이어오고 있다. 이 시조는 만개한 꽃과 지는 꽃, 존재와 부재, 만남과 이별, 나와 너, 하루와 천년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둘은 상극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 둘은 서로에게 원인이면서 조건일 뿐이다. 

민병도 시인은 시조 ‘삶이란’에서 이렇게 읊었다. “풀꽃에게 삶을 물었다/ 흔들리는 일이라 했다// 물에게 삶을 물었다/ 흐르는 일이라 했다// 산에게 삶을 물었다/ 견디는 일이라 했다.” 풀꽃과 물과 산과 사람의 일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흔들리고, 흐르고, 견디는 시간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두는 번성과 쇠잔의 시간을 함께 살고 있다. 꽃나무에게 개화와 낙화가 함께 있듯이.

[불교신문3631호/2020년11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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