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생소한 한국어, 한국형 떼창으로 전세계 보급

문광스님
문광스님

➲ BTS가 이끌고 있는 절정의 한류콘텐츠

라디오 FM에서 들려오는 팝음악을 듣고 자란 우리 세대들에게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차트 1위 소식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수차례 석권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과연 BTS가 그렇게 대단한 그룹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과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 그리고 브라질 상파울루 스타디움을 강타한 역대급 공연실황의 열기는 실로 대단했다. 그럼에도 “이 음악이 진정 빌보드 1위가 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떨치지는 못했다. 기존의 케이팝 그룹들과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전 세계가 왜 저렇게 열광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던 한국의 중년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 복합적 성공요인과 긍정적 메시지

한국학 에세이를 쓰고 있는 김에 그 이유를 분석해 보고 싶었다. 주변의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물어도 보고, 기사를 찾아도 보고, 영상들도 챙겨보았다. 대체적으로 매력적인 외모와 놀라운 퍼포먼스,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완성도 높은 소셜 미디어의 활용, 그리고 무엇보다 동시대의 같은 세대들의 문제를 과감하고 통렬하게 얘기하면서도 선한 영향력과 긍정적인 메시지로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기존의 한류스타들의 장점들이 종합 패키지로 응축되었다는 점과 끊임없이 노력하여 변모해 가는 과정을 SNS를 통해 다양하게 소통하여 팬과 함께 동반 성장해 나갔다는 특징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무미건조한 분석은 일반적인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동영상들을 여러 차례 챙겨보다 보니 뭔가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방탄소년단이 강화 보문사에서 앨범의 흥행을 기원하며 기와불사에 동참, 서원을 적어 보이는 모습. 사진출처=방탄 트위터(@BTS_twt)
방탄소년단이 강화 보문사에서 앨범의 흥행을 기원하며 기와불사에 동참, 서원을 적어 보이는 모습. 사진출처=방탄 트위터(@BTS_twt)

➲ 아민정음과 한국어 떼창

‘얼쑤’, ‘지화자 좋다’와 같은 추임새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청춘들이 한국어 가사를 능숙하게 따라 부르는 장면은 마치 서울 잠실이나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춤과 노래를 가사와 함께 보다 보면 마음이 밝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며 뭔가 자꾸만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만약 현재 자식이 어디선가 왕따를 당하는 입장에 놓여있는 부모라면 한국어 떼창과 함께 칼군무를 추게라도 하고 싶어지는 내러티브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편견과 억압을 막아준다는 아티스트 ‘방탄’과 이들을 지켜 주겠다는 지구전역에 퍼져 있는 팬덤인 ‘아미(ARMY)’의 조합은 입에 착착 달라붙는 한국어 발음의 경쾌함을 매개로 가는 곳마다 강렬한 발산력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노래하고 춤추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두었더니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 가사를 자발적으로 번역하고 해석하여 공유해 버린 것이다.

각자가 손바닥 안에 갖고 있는 사사무애(事事無碍)의 화엄세계에서 영어나 그 외의 외국어로 뉘앙스를 모두 살려 번역할 수 없는 한국어 단어들은 ‘아민정음(아미+훈민정음)’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지구 전역에 자연스럽게 전송되었다. “모두 뛰어(Mo-du Twi-uh: everybody jump)”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어렵고 생소한 한국어는 이렇게 한국형 떼창으로 지구 전역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케이팝 딕셔너리를 통한 한국어 공부 열풍은 세상을 뒤덮어 가고 있는 형국이다. 

➲ 싸이 자신도 몰랐던 ‘강남스타일’의 성공비결

싸이는 스스로 2012년 전 세계를 강타한 노래 ‘강남스타일’이 왜 그토록 흥행했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불교대학 강의시간에 말춤이나 뮤직비디오의 코믹요소 외에 중요한 흥행요소 하나를 한국인들이 간과하고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는 바로 ‘단전(丹田)을 울리는 한국어 발음의 저력’과 ‘동양 삼국 가운데 한국어에만 살아있는 입성(入聲)’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인이 함께 즐겁게 따라했던 가사는 바로 “싸나이”와 “옵~ 옵~ 옵~ 오빤 강남스타일”이라는 구절이었다. ‘싸나이’는 ‘사나이’가 경음으로 된 것으로 경쾌함과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었을 것이며, 단전에 힘을 주었다가 뿜어내는 ‘옵빠(oppa)’라는 단어는 흥을 일으킴과 동시에 쌓인 스트레스를 일시에 풀어주기에 충분한 한국어 발음의 백미였다.

그것도 ‘옵~ 옵~ 옵~’이라는 반복을 통해 중단전과 하단전에 강하게 힘을 모으는 과정까지 있었으니 ‘빠’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의 발산력은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전 지구인이 함께 말춤을 추며 단전에서 끌어올린 발음으로 함께 호흡했던 것이 ‘강남스타일’의 숨은 흥행비결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한국어 입성발음은 단전을 강하게 울려주기 때문에 발음하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흥을 일으키게 된다. 사진은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
한국어 입성발음은 단전을 강하게 울려주기 때문에 발음하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흥을 일으키게 된다. 사진은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

➲ 입성(入聲)이 살아있는 한국어의 힘

중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성룡(成龍)은 한국어를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형’이라는 발음은 너무 어려워 매번 ‘횽님’이라고 하다가 급기야 모든 남성을 죄다 ‘옵빠(oppa)’로 통일해서 불러버렸다고 한다. 이 ‘오빠’라는 단어는 발음도 쉽고 기운도 순식간에 배출할 수 있는 입성(入聲) 발음의 전형이다. 

입성은 우리가 고등학교 국어 고문시간에 배웠을 때 흔히 ‘국·술·밥’이라고 외웠던 것으로 받침이 ‘ㄱ’, ‘ㄹ’, ‘ㅂ’ 등으로 갑자기 끝나는 발음을 말한다. 과거 당나라와 같은 고대 중국에서는 평상거입(平上去入)이 있었으나 현대 중국어에서는 입성이 사라져 버리고 나머지 평상거(平上去)에 편입되어 현재의 성조 체계인 사성(四聲)으로 정착되어 버렸다. 

1에서 10까지의 숫자로 살펴보자면 한국어의 일(1), 육(6), 칠(7), 팔(8), 십(10) 등은 모두 입성이지만 중국어에서는 이(1), 리우(6), 치(7), 빠(8), 스(10)에서처럼 ‘ㄱ’, ‘ㄹ’, ‘ㅂ’이 모두 사라지고 없어졌다. 입성의 발음들은 단전을 강하게 울려주기 때문에 이를 발음하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체증이 풀리며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흥을 일으키게 된다. 

일본어에서도 역시 입성발음이 없어서 ‘가므사 하무니다(감사합니다)’와 같이 발음할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주로 발음을 가슴 위와 머리로만 하게 되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을 모두 싣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것이다.

독일어의 발음은 강력하여 게르만족의 강인한 민족성과 기상이 잘 드러나게 되어 있고, 부드럽기로 유명한 프랑스어에서도 에흐(r)와 같은 단전을 울려주는 강력한 발음들이 있어서 만만찮은 기운을 드러내 주고 있다. ‘언어가 곧 그 나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언어만의 독특한 발음은 그 민족의 성품과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 준다. 

우리나라의 말에는 입성과 같은 강력한 발음들이 있어서 카페에서 만나 수다만 떨어도 묵은 감정들을 해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게다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어휘와 부드럽고 리듬감 있는 억양도 가지고 있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감정이 순화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다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미학적인 한글을 접하면 그 아름다운 조형미에 점점 매료되어 갈 것이다. 

➲ 이제 간방운(艮方運)이 열리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와 함께 BTS의 음악을 통해 한국어는 점차 세계인의 언어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앞으로도 케이팝 가수 가운데 빌보트 차트를 석권하는 제2, 제3의 BTS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사적으로 봤을 때 세계 전역에 한국어를 일시에 보급한 공로는 단연 방탄소년단에게 돌아가게 될 듯하다. 

한국어와 한글이 전 세계에 보급되면 우리의 역사와 문화, 마음과 정서는 전 세계인의 삶에 깊이 스며들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열정적인 흥취와 정감어린 어울림의 언어가 퍼진다는 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정신이 전 세계에 보편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한국을 역학(易學)에서는 동북방인 간방(艮方)이라 하고 청년을 상징하는 소남(少男)이라 부른다. 탄허스님은 40여 년 전부터 한국에 간도수(艮度數)가 들어와 있고 한국의 정신문명이 세계의 중심에 설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이제 간방운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한국의 젊은 청년(少男)들의 자유로운 정신과 활달한 기상을 우리 기성세대들이 어떻게 잘 뒷받침해줄 것인가가 남은 과제라고 하겠다. 인재양성은 불세(不世)의 사업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보다 훨씬 나아보이는 이 젊은 청춘들에게 어떻게 길을 터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 봐야할 때가 온 것 같다.

[불교신문3631호/2020년11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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