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담의 세계 ‘어엿한 그대’] ⑰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대에게
[불교상담의 세계 ‘어엿한 그대’] ⑰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대에게
  • 임인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상담학 초빙교수
  • 승인 2020.11.18 17:22
  • 호수 3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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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도 그대를 사랑했다는, 잃을 수 없는 사실”

불교상담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이야기다. 임인구의 ‘어엿한 그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마음이, 또 그 마음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온전한지를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이미 어엿하게 서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연기법에 근간하여 역설과 상호관계성의 원리로 안내한다.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그리고 마음 자체를 친구처럼 또는 연인처럼 대하는 직접화법으로 구성된다.

임인구
임인구

그대여,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그대에게는 이 말이 필요하다. 정말로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그대는 다만 아픈 것이지, 결코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대여, 그대가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이 이야기만은 꼭 그대의 귀에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픔은 잘못이 아니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대여, 모든 심리상담은 사실 단 하나의 활동이다. 그것은 아픔과 잘못을 분리하려는 활동이다. 그 둘 사이에 가장 명확한 차원의 벽을 세우려는 활동이다.

니체도 그대를 위해 많이 애썼다. 이를테면, 그대가 어렸을 때 어떠한 잘못을 해서 손바닥을 맞는 벌을 받았고, 그 벌의 결과로 그대는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는 세상 속에 살다보니, 결국 그대는 아픔과 잘못을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대가 아플 때면, 그대는 자동적으로 그대가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를 찾게 되었다.

니체는 이 동일시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는 오류라고 그대에게 전한다. 실제로 잘못을 했기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프기 때문에 마치 잘못한 것처럼 그대가 착각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착각은 그대를 더 아프게 한다. 아픔과 잘못을 착각할 때, 그대는 아픔 앞에서 자책하게 된다. 곧, 아픔에 자책이라는 또 하나의 아픔까지 더 얹게 된다.

그대여, 그것은 지옥이다. 그대의 몸 바깥쪽에서도 그대의 여린 살에 채찍질을 가하고, 그대의 몸 안쪽에서도 그대의 여린 살에 채찍질을 가하는, 그것은 그렇게 가혹한 지옥이다. 또한 이 지옥이 무엇보다 비극적인 이유는, 지옥 속에서는 누구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의 아픔과 그에 따른 자책에만, 곧 자기 자신에만 철저히 몰두하는 상태가 바로 지옥이다. 그래서 지옥은 소외의 시공간이다. 그리고 그 소외 속에서 가장 빨리 망각되는 것은 바로 그대가 잃은 그이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대여? 그대의 아픔은 분명 그대가 사랑하는 그이를 잃음으로써 비롯된 것일텐데, 어느덧 그대는 자책 속에서 실제로 그이에 대해서는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바로 이렇게, 자책하는 그대는 그대도 더 아파질 뿐만 아니라, 그대가 잃게 된 그 상대의 아픔도 보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라, 상대의 상실은 그저 그대의 인생에 또 하나의 잘못을 더해주는 사건으로서만 의미지어지게 된다. 그대가 너무나 사랑했던 그이의 의미가, 고작해야 그대의 자책을 위한 또 하나의 잘못의 소재로만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속상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대여? 그대여, 그러니 그대는 기억해야 한다. 그대가 자책에서 벗어나려면, 그대는 그대가 사랑했던 그이를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그이가 그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 모든 상실의 사건을 연애로 비유하자면, 이미 끝나버린 모든 연애에서 그대가 상대를 못가도록 붙잡고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그 상대로부터 어떠한 말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기 위해 이렇게 묻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 나를 정말로 사랑했나요?” 그대는 그대가 사랑했던 상대로부터, 그 상대 또한 그대를 간절히 사랑했다는 그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대가 전부였다고, 매일매일 그대뿐이었다고,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고. 이 말을 듣고 싶어서, 그대는 이미 떠난 상대조차도 아직 떠나지 않은 것처럼 그 잔영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여. 들을 수 있다. 가능하다. 몇 번이라도 들을 수 있다. 영원히 들을 수 있다. 그대여, 그것은 이미 일어난 역사다. 이미 확증된 사실이다. 그이가 그대를 그대만큼이나 간절하게 사랑했다는 역사는, 그대가 영원히 잃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대는 그저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그대가 그이로 인해 너무나 행복했던 그 장면을 떠올리면, 그 장면 속에서 그이가 그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렇게 선명하게 대답된다. 그이를 보며 행복을 느끼는 그대의 얼굴을 마주 보며, 같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이의 얼굴이 그 대답이다. 

그 장면에는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 이내 그대의 입으로 그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당신이 있어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당신 덕분’이라는 의미다. 당신 덕분에 사랑할 수 있었다. 당신 덕분에 사랑받을 수 있었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는 알게 된다.
그대 자신이 있어서 또한 누군가가 행복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내가 있어서 참 좋다”라는 사실을.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대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대는 이제 이렇게 말하면 된다. “자기야, 내가 있어서 참 좋지?” 좋은 그대가 있다. 있는 것만으로 좋은 그대가 있다. 이것이 그대를 떠나간 그이가, 떠나면서까지도 그대에게 남기고 간 가장 귀한 선물이다. 오직 그대만을 생각하던 그이의 마음이다. 가득 남겨진 그 마음이 그대의 가슴을 꽉 채우고 있을 때, 그대는 그것을 아픔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대는 아픈 것이지,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그대는 지금도 사랑 속에 있는 것이지, 영영 사랑을 잃은 지옥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여, 그대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그대가 사랑 속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그대가 있는 것만으로 더욱 사랑받는 그대이기를 꿈꾸던 마음이 있었다. 그 남겨진 마음을 가슴에 가득 품고 그대는 살아간다. 그대 또한 그 마음에 가득 안겨 살아간다. 남겨진 마음은, 이처럼 그대와 함께 계속 살아가리라는 다정한 언약이다. 그대와 그이의 영원한 포옹이다. 잃은 것은 없다. 남은 것은 마음이다.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던 그이의 마음이다.

[불교신문3630호/2020년1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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