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경
김두경

가을이 시나브로 저물고 있다. 가을의 깊이는 나뭇잎에서 안다. 생기가 덜하다 싶으면 색깔 옷을 갈아입고, 물든다 싶으면 후두두 떨어진다. 예년 같으면 이런 변화를 생생하게 눈에 담으며 산길을 걸었을 텐데. 계절의 정취를 만끽하며 재잘댔을 텐데.

35년 지기 친구들과 팔공산 둘레길을 걸은 지도 십여 년이 되었다. 산보 삼아 걷는 길이 힘에 부치지도 않았고, 새소리 정도는 가뿐히 묻어버릴 수다는 개운했다. 그게 좋아 한 주, 두 주 모여서 걷게 된 것이 길게 이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 한곳에 모여 네 명이 한 차로 이동한다. 산행의 시작은 차에 타는 순간부터다. 어느 하나가 그 주에 있었던 일 중 제일 속 터지고 억울한 일로 포문을 연다. 격렬하고 직설적인 반응이 득달같이 따라붙는다. 갖은 폭로에 뜬금없는 고백, 포복절도할 이야기까지. 감정의 쓰레기통 내지는 마음 수련장이다. 산행으로 몸을 보하고 수다로 마음을 다스리니 어찌 좋지 아니하랴.

코스는 고민하지 않는다. 길눈은 어둡지만 산길 만큼은 용하게 밝은 베테랑 친구가 정하는 대로 가면 된다.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솔길을 걷는다. 마음의 안정을 주는 나름의 대열도 있어 그 순서대로 걷는다. 뒤쪽에서 하는 이야기는 중간에서 요약해 맨 앞으로 전달한다. 가끔 힘든 코스를 오를 때면, 베테랑이 앞서가서 기다린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뒤이어 올라오는 세 명의 사진을 찍는다. 셋이 도착할 즈음이면 다시 산을 오른다. 결과적으로 이 셋은 쉬지 않고 계속 오르는 셈이다. 야박하다고 생각할지 몰라 덧붙이자면 셋은 워낙 쉬엄쉬엄 걷기 때문에 굳이 안 쉬어도 된다. 남는 건 하이 앵글로 찍힌 정수리 사진뿐이다.
 

삽화=김두경
삽화=김두경

지나간 정수리 사진들을 넘겨본다. 올해는 그 길을 한 번도 밟지 못했다. 계절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걸으며 몸과 마음을 보하고 싶다. 다닥다닥 붙어 걷는 날이 쉬이 오면 좋겠다. 시나브로 겨울이 다가온다.

[불교신문3630호/2020년1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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