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살은 어디서 오셨는가’
이치 바로 볼 지혜의 눈 얻기를


좋아하는 것만 보려는데 익숙
상에 집착해 마음 요동치기도
눈앞에 펼쳐진 행복 알아차려야

관세음보살님은 대세지보살님과 함께 극락세계에서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아시다시피 관세음이라는 말은 셀 수 없이 많은 세간의 중생들이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서 원하면, 그 소리를 보고 곧바로 구제한다는 뜻이다. 고통에 처한 중생들의 모습이 가지가지이므로 대자비를 행하는 보살의 모습도 천변만화의 모습으로 응하는 것(應身)이다. 

관세음보살 십대원은 관세음보살님께서 천광왕정주여래 앞에서 서원한 발원문이다. 이 십대원에는 대승불교의 이념이 함축되어 있어 불자들이 수행해 나가는 길을 밝히고 있다고 하겠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① 원아속지일체법(願我速知一切法)   이 세상의 온갖 진리 어서 빨리 알아지이다.

원하옵건대 이 법계의 일체법, 즉 현상적, 정신적으로 연기(緣起)하는 모든 존재의 법을 하루속히 알게 하여 주십사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이며, 내가 사는 이곳은 어떤 곳이며, 내가 받아야만 하는 이 고통과 번뇌를 있게 한 일체의 만법, 유위법(有爲法)을 알고자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 걸음을 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인에 따라 인연을 맺고 사는 존재로서 고통을 만들어내는 이 일련의 치밀한 구조를 알지 못하면 이 고통의 사슬을 풀 수도 없고, 또 알지도 못하고 흐르는 세월에 쫓겨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고 또 쌓아온 업연에 따라 기약도 없이 정처 없는 윤회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부처님을 만나서 이 세상의 이치가 인연에 따라 이루어지고 소멸하는 줄을 알게 되었고, 인과로 인한 업연에 따라 윤회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하기에 이 윤회를 영원히 소멸하는 길을 가고자 불교를 믿는 것이다.

이런 좋은 진리를 외면하고 삿된 사상이나 종교에 빠져 어리석음을 범하고, 헛된 욕심과 망상에 사로잡혀 꿀물에 취하다가 스스로 고통의 나락에 빠지는 사람들이 매일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음을 본다. 

그렇지 않기 위해 세계의 모든 현상을 환하게,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을 속히 얻어야 하는 것이다.

② 원아조득지혜안(願我早得智慧眼)   부처님의 지혜 눈을 어서 빨리 얻어지이다.

지혜의 눈은 부처님의 눈이다. 지혜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삿된 도리에 빠져 안타깝게도 무수한 세월을 윤회해야 한다. 윤회는 죽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있으면서도 매일 윤회한다. 나쁜 생각에 사로잡혀 지옥고를 당하다가 좋은 인연을 만나면 극락에도 간다. 그렇게 무한히 반복하는 세계가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이다.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 호감이 가는 것만 보려고 하는데 익숙하다. 눈에 보이는 상에 집착해 마음이 요동친다. 그래서 진정한 이 세계의 이치를 보지 못한다. 진정한 행복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도 보지 못한다. 나아가 미래를 보는 식견도 부족하다. 마치 장님 앞에 불을 환히 켜놓아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부처님의 눈을 얻어 갈 길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 

[불교신문3629호/2020년11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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