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폐사지 일대 조사하는 불교문화재연구소

2018년부터 꾸준히 현장 조사
최근 금동제 유물 무더기 출토
“신라 수도 경주의 대표 사찰”

전국의 폐사지 발굴사업 진행
희귀 유물들 보존 관리할
종단 차원 ‘사지’ 박물관 필요

10월22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진행한 경주 황용사지 현장조사 모습.
10월22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진행한 경주 황용사지 현장조사 모습(위 사진)과 황용사지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유물들.
황용사지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유물들.

경상북도 경주시 황용동에는 황용사지(黃龍寺址)’라는 절터가 있다. 감포 앞바다 근처에서 만날 수 있다. 삼국시대 최대 건축물로 추정되는 경주 구황동의 유명한 황룡사지(皇龍寺址)와는 다른 절이다. 둘을 구분하기 위해 동일한 ()’ 자를 쓰는 데도 황용동의 절터는 굳이 황용사지다.

명칭의 유사성 등을 근거로 학계 일부에서는 황룡사와 황용사의 근친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황용사 자체만으로도 고고학적 가치가 크다. 황룡사와 마찬가지로 신라시대에 지어진 대찰로 속속 확인되는 중이다.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제정스님)가 그 비밀을 꾸준히 밝혀내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경주 황용사지에 대한 조사 성과 공개 설명회1022일 현장에서 개최했다. 황용사지에서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3년에 걸쳐 시굴 발굴조사가 계속 실시되고 있다. 올해 이번 조사에선 중심 사역(寺域) 서쪽구간을 들여다봤다.

서탑(西塔)을 중심으로 회랑, 건물지, 석축, 석렬, 진입부 등 많은 유구가 출토되었다. 지난 조사에서 찾았던 투조 금동귀면이 추가로 2점 더 나왔다. 금동보당 당간과 기단, 금동불상 대의편, 금동사자상, 금동연봉, 금동 촉대받침 등 금동제 유물 20여 점이 쏟아졌다.

특히 금동보당 당간과 기단부는 지금까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적이 없다. 이번에 황용사지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현재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가장 큰 보당(寶幢)이다. 현재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보당은 길이가 73.8인데 황용사지의 금동보당은 남아있는 당간부와 지주부만 110. 금동불상 대의편(大衣片, 옷주름)은 직경 30가 넘으며 전체 비례로 볼 때 약 1m 이상의 대형 금동불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도 금동연봉(연꽃 봉오리), 금동촉대받침 등 다양한 금동제 유물이 비로소 빛을 봣다. 구리나 놋쇠에 금박을 입힌 금동(金銅)은 고대사회의 대표적인 장신구이자 귀중품이다. 황용사가 창건 당시 신라의 수도 경주의 자랑거리였음을 시사한다.

경주 황용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이며 경주 보문단지에서 감포 방면으로 넘어가는 동대봉산(옛 은점산) 절골에 위치해 있었다. 정확한 사연은 모르나 조선시대에 무너졌다.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스님은 경주 황용사지는 통일신라시대의 화려한 금속공예기술과 건축기술이 집약된 유적으로 확인됐다이번 발굴조사의 성과는 고고학적 쾌거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황용사지에 대한 국가문화재 지정, 정비, 복원 등이 이루어진다면 또 다른 경주지역 대표 불교문화유적이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2013년부터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지원을 받아 전국의 (비지정)폐사지를 대상으로 중요 폐사지 발굴조사사업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황용사지 조사도 이에 따른 것이다. 2018년부터 경주 황용사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시작해 금년까지 매년 추정사역 및 중심사역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왔다.

궁극적으로는 절터의 유물들을 안치하고 보존할 종단 차원의 사지(寺址) 박물관 건립을 염두에 두고 있다. 황용사지는 역사의 산물인 동시에 한국불교의 산물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절터들도 마찬가지다. 관리 주체가 불분명하면 어렵게 찾아낸 유물들이 또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