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 저력…“힘을 덜은 곳이 힘을 얻는 곳”

세상의 모든 것은 깊어지면 선(禪)이 된다고 한다. 스포츠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선(禪)은 정(定)과 혜(慧)의 통칭이자 사마타(집중명상)와 위빠사나(분석명상)의 통합명상이니 인간의 집중과 통찰이 깊어지면 무엇이든 선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스포츠는 생활체육과 프로스포츠로 나눠볼 수 있겠는데, 두 분야를 막론하고 그 어떤 운동에서건 몸과 마음을 일체화하여 정신을 집중하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쓰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스포츠도 선(禪)의 영역에서 거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교의 주요한 경전가운데 하나인 <대학>에는 ‘수신위본(修身爲本)’이라는 말이 있다. 대학의 8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인데,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성의’나 마음을 바르게 하는 ‘정심’이 근본이 아니라 몸을 닦는 ‘수신’이 근본이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에 많은 유학자들도 이를 궁금해 했던 모양이다. 몸을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바르게 한 바탕 위에서 다시금 몸을 수련해야 하는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므로 “수신이 근본”이라고 했다는 것이 많은 주석가들의 결론이었다. 

21세기의 스포츠를 보는 관점은 단순한 경쟁과 승리의 획득만을 중시하지 않는다. 전 세계의 스포츠 애호가들은 이제 스포츠를 예술만큼이나 즐기고 고상하게 향유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팬덤을 형성하며 새로운 문화현상들을 스포츠를 통해서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번쯤 스포츠와 선(禪)의 접점을 찾아보는 재미난 체험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불자 선수 이상화씨가 2014년 제22회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이 결정된 순간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불자 선수 이상화씨가 2014년 제22회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이 결정된 순간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한국 스포츠 스타, 힘빼기 실력 

나는 처음 참선을 할 때 몸에서 힘을 빼지 못해서 많은 고생을 했다. 선원에서 안거를 날 때에도 몸에서 힘을 완전히 빼지 못했다. 안거기간 중 손빨래를 하다가 온몸에 가득 힘을 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다음부터는 몸에 힘을 빼고 용을 쓰지 않고 설렁설렁 빨래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힘을 뺀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잔뜩 힘을 주고 있던 초보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고수들의 공통적인 경지가 바로 힘을 빼는 것이다. 간화선의 지침서인 대혜 종고 선사의 <서장(書狀)>에 보면 “생력처(省力處)가 득력처(得力處)”라는 말이 나온다. “힘을 덜은 곳이 힘을 얻은 것이다”라는 말로 참선을 제대로 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여 몸의 힘도 빼고, 생각의 힘도 빼고, 마음의 힘도 완전히 빼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쳐 지나가던 TV화면에서 국보급 야구투수였던 선동렬 선수의 얘기가 들려왔다. 모든 투수코치가 어깨에 힘을 빼고 공을 던지라고들 하는데 알면서도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도 그러하다가 선수생활 마지막 1년을 어깨에 힘을 빼고 공을 던져 보았다는 것이다. 일본 나고야의 마무리 투수시절에 드디어 어깨에 힘을 빼고 투구를 해 봤는데 공의 속도는 전성기보다 떨어졌지만 절묘한 제구력으로 상대방 타자들을 압도했다는 것이었다. “과연 선동렬이다. 저 정도라면 투수로서는 한 소식 한 것이라 할 수 있겠네”라는 감탄이 새어 나왔다.

그 후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의 얘기도 듣게 되었다. 한 해 최다홈런 아시아 신기록까지 세웠던 그도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모든 이유는 몸에 힘이 들어갔기 때문으로 분석되었고 배팅 폼을 변경하고 이에 적응하여 드디어 힘을 뺀 뒤에 타격을 해서 전성기의 실력을 회복했다는 회고담이었다. 

비단 야구만 그러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스포츠는 힘을 빼야 한다. 아니, 스포츠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세상만사가 다 그러한 것이다. 더 잘하고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더 힘을 빼고 더 부드럽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운동을 통해서도 선(禪)을 배울 수 있다. 어쩌면 스포츠가 그대로 선(禪)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수신(修身)이 곧 수심(修心)이요, 잘 하려면 마음을 더 내려놔야 하는 것이다. 

➲ 한국 골프여제들과 양궁선수들의 용심처(用心處)

세계랭킹 10위권 안에 늘 4~5명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 여자 골프선수들의 경우 힘빼기의 달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번도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는 문외한인 나도 골프는 힘을 빼야 한다는 것쯤은 단번에 알았다. 

골프를 사랑하는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많다고들 하는데 나도 출가하여 참선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골프에 한 번쯤 빠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골프는 참선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철저한 운동이며, 멘탈 게임의 대명사로 어떤 경우에도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 정(定)과 혜(慧)가 가장 중요한 스포츠가 바로 골프인 것 같다.

한국의 여성들이 세계에서 골프를 가장 잘한다는 것은 한국인의 선정력(禪定力)이 세계 정상급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여실한 증거가 된다. 박세리 선수는 1998년 US 여자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들어가 연못에 빠진 공을 퍼 올렸던 장면에 대해 선수시절 단 한번 느껴본 완벽한 샷이었다고 회상했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서 밝게 빛난 무심(無心)과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였다고 할 만하다. 

박세리 키즈인 박인비 선수는 올림픽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이 종목의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나는 그녀의 경기모습을 이때 처음 보았는데 멋진 샷을 날린 뒤에 환호하는 관중들을 향해 무표정하게 오른손만 살짝 들어 올려 보이는 것을 보고 그 담담함에 놀랐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되는 스포츠 가운데 하나로 양궁이 있다. 세계대회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어렵다는 양궁은 한국이 명실상부하게 세계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종목이다. 옛날 군자들의 겨룸으로 알려져 있는 ‘향사례(鄕射禮)’에서 볼 수 있듯이 활쏘기는 상대방과의 경쟁이지만 오직 자신만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경기이다. 

한국인이 가장 강한 스포츠 종목들은 모두 이처럼 선적(禪的)인 것들이다. 골프, 양궁, 사격 등은 상대편이 있긴 하지만 자신의 내면과의 싸움이 더욱 본질적인 경기들이다. 이처럼 정신력과 심리적인 측면이 승부에 강하게 작용하는 스포츠에 한국인들이 강세를 보인다는 것은 한국인의 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자재하게 쓰는 선수들

김연아 선수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경기에서 보여준 ‘강심장’은 <금강경>의 ‘항복기심(降伏其心)’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가 깨끗한 연기를 보여주고 들어오자 장내는 일본 팬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소리로 뒤덮였다. 한국 국민 모두는 이어서 연기를 펼칠 김연아 선수가 혹시 불안해 할까봐 내심 걱정했다.

그 즈음 화면에 잡힌 그녀의 ‘피식’하고 웃어넘겨버리는 찰나의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는데 나는 메달의 색깔이 결정된 순간은 바로 그 때라고 본다. 평지돌출이라고 할 정도인 피겨불모지에서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세계 정상을 차지한 원동력은 바로 흔들림 없이 굳건했던 마음의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계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주종목 가운데 하나로 쇼트트랙이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추월을 하거나 마지막 결승선 앞에서 한 발을 뻗어 우승을 차지하는 한국선수들을 보면 고도로 발달되어 있는 순간 집중력을 절감한다. 수행자들이 사마타와 위빠사나라는 선수행을 통해 고도의 집중력과 판단력을 기르듯이 운동선수들 역시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정혜력(定慧力)을 기르고 있다. 

평발이지만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던 산소탱크 박지성 선수나 골문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수를 유린하는 손흥민 선수의 모습을 보면 한국 축구의 발전을 실감한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한국의 스포츠 스타들은 자신감을 뽐내면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극기(克己)에서 오는 확신과 완벽한 준비가 저들을 그토록 당당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젊은 선수들은 인터뷰에서 인생을 만끽하고 행복한 개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운동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육체적인 훈련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힘을 기르고 강한 정신력을 탑재하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고 한다. 한국 스포츠가 보여준 저력들 이면에는 이처럼 ‘선(禪)스타일’이 조용히 장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불교신문3627호/2020년11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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