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 영산회상도 · 시왕도 환수

극락보전 삼존좌불 후불화로
1755년 조성된 초대형 불화

1954년 미군 의해 불법반출
6조각 훼손된 채 미국서 발견

라크마서 16개월간 보존처리

6월 종단·라크마 반환 합의
명부전 시왕도 6점도 환수

11월9일 신흥사서 환영법회
한국전쟁 전몰장병 천도재도

종단 사찰 정부기관 지자체
NGO단체 협력해 환수 성공

신흥사는 66년만에 귀향한 신흥사 영산회상도를 11월9일 통일대불 광장에서 거행하는 ‘신흥사 영산회상도·시왕도 귀국 환영법회 및 6·25 전몰장병 천도재’를 통해 사부대중에게 첫 공개할 예정이다.(©조계종 문화부)

한국전쟁 혼란기를 틈타 사라졌다 66년만에 설악산 품으로 환지본처(還至本處)한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119일 사부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된다.

조계종 제3교구본사 신흥사(주지 지혜스님)119일 오전9시 경내 통일대불전에서 코로나19 조기 종식과 국운융창을 위한 신흥사 영산회상도·시왕도 귀국 환영법회 및 6·25 전몰장병 천도재를 봉행하며 두 성보의 귀환을 대내외에 널리 알린다는 계획이다.

귀국 환영법회는 119일 오전9시 점안의식을 시작으로 문을 연다. 이어 대령과 관욕, 불공, 헌화, 환영사, 축사, 격려사, 유공자 포상, 관음시식, 소대봉송 등의 의식을 통해 성보 환수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국전쟁 전몰장병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게 된다. 의식 집전은 전 조계종 어산어장 동주스님과 어산종장 화암스님이 맡아 거행한다.

영산회상도를 보존처리해 복원한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와 라크마 수장고에서 영산회상도를 처음 발견하는 등 환수되는데 중심역할을 한 김현정 전 라크마 큐레이터 등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환수에 기여한 유공자에 대한 감사패 수여의 시간도 갖는다.

신흥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1755(영조 31) 6월에 그렸다는 발문(跋文)이 선명한 가로 4.064m, 세로 3.353m 크기의 초대형 불화다.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본전인 극락보전(보물 제1981) 내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721)의 후불화로 법당을 장엄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직후인 19546월과 10월 사이에 자취를 감췄다. 19545~6월 미 육군 통신장교 폴 팬처 씨가 찍은 사진에는 영산회상도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4개월 후쯤인 195410~11월 미 해병대 중위 락웰 씨가 찍은 사진에는 영산회상도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폴 팬처 씨가 1954년 5~6월 촬영한 신흥사 극락보전과 명부전 사진에는 영산회상도(사진 위 왼쪽), 시왕도 3점(사진 위 오른쪽)이 존재하지만, 리차드 락웰 씨가 같은 해 10월~11월 촬영한 사진에는 영산회상도(사진 아래 왼쪽)와 시왕도 5점(사진 아래 오른쪽)이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한국전쟁으로 195010월 비상계엄이 선포된데 이어 38선 이북지역에 대한 유엔군에 의한 군정 시기(19518~195411)를 거치는 동안 신흥사 일대는 스님과 불자, 일반인은 물론 한국군조차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없을 만큼 엄격하게 통제됐다.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경판 등 적지 않은 신흥사 성보문화재가 한국전쟁과 이후 혼란기를 틈타 도난과 훼손, 약탈 등으로 사라졌다.

특히 신흥사는 신흥사 경판’ 1점을 불법반출했다가 65년 만인 20193월 되돌려준 락웰 씨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이 유엔군 군정 시기 출입통제구역이었던 신흥사 일대를 편하게 출입할 수 있었던 미군에 의해 영산회상도 등 신흥사 성보문화재가 도난 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군정이 끝난 뒤 신흥사 영상회상도가 도난당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신흥사 스님과 신도들은 곧바로 영산회상도 조성불사를 추진했다.

현재 극락보전에 봉안돼 있는 영산회상도는 불법반출된 영산회상도를 대신하기 위해 1956317일 점안해 새롭게 모신 탱화다.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이후 수십년간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다가 미국 LA카운티박물관(LACMA, 이하 라크마)석가여래설법도(Buddha Shakyamuni Preaching to the Assembly on Vulture Peak)’라는 이름으로 수장고에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2007년 뒤늦게 국내에 알려졌다.

김현정 라크마 큐레이터가 사진 자료조차 없이 라크마 수장고에 보관중이던 석가여래설법도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라크마로 부터 그 가치를 감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정우택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화기(畵記)를 통해 신흥사가 원소장처였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수십년간 자취를 감췄던 신흥사 영산회상도의 존재가 세상에 뒤늦게 알려졌다.

라크마는 1998년 뉴햄프셔 홉킨튼 지방에 사는 메리 S. 프렌치(Mary S. French) 씨로부터 영산회상도를 매입할 당시 날카로운 칼날에 의해 6개의 큰 조각으로 잘리고 오랫동안 말려 있어 전시가 어려울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고 설명했다. 프렌치 씨는 아들의 다락방에서 발견했다면서 중국에서 건너온 벽지로 추정할 뿐 작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라크마는 1998년 석가여래설법도를 구매하기 직전, 화기(畵記)를 확인해 신흥사에 원소장처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주장하지만 신흥사 측은 공문을 받는 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6개 큰 조각과 파편으로 나눠진 석가여래설법도는 지난 20109월부터 14개월 동안 보존처리 작업을 통해 완벽하게 복원됐다. 라크마는 보존처리 작업 전체 과정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특별한 불화 복원 프로젝트를 펼친데 이어 라크마 한국관에서의 특별 전시에 맞춰 영산재를 거행하기도 했다.

한국 CJ그룹 후원으로 완벽하게 원래 모습을 되찾은 석가여래설법도는 미국에 있는 한국 불화 가운데 가장 크고 화격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 받기에 충분했던 만큼 라크마의 불화 복원프로젝트는 성공리에 회향했다. 정우택 교수가 연구년 동안 라크마에 상주하며 학술 자문을 했으며, 지류 분야 전문가인 박지선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장(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5명 이상의 연구원과 함께 라크마로 건너가 1년 넘게 보존처리작업에 매진한 결과다.
 

영산회상도와 함께 환수된 신흥사 시왕도. 왼쪽부터 2·4·6대왕이다.(©조계종 문화부)
영산회상도와 함께 환수된 신흥사 시왕도. 왼쪽부터 3·5대왕, 9대왕이다. 일부가 훼손돼 보존처리가 필요한 실정이다. 아울러 향후 시왕도 나머지 4점에 대한 환수가 진행될 예정이다.(©조계종 문화부)

영산회상도와 함께 환수된 신흥사 시왕도(十王圖)1798(정조 22) 가로 93.9cm, 세로 124.4cm 크기로 조성돼 명부전을 장엄했다. 시왕도는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10명의 대왕을 그려 주로 명부전에 모셔놓고 있다. 신흥사 시왕도는 1651년 조성해 명부전 중앙에 모신 목조지장보살삼존상(보물 제1749)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1·3·5·7·9대왕이, 우측으로 2·4·6·8·10대왕이 차례로 모셔져 있었다.

신흥사 시왕도는 한폭에 2~3분의 대왕이 그려져 있다. 1·3·5대왕이 한 화폭, 7·9대왕이 또 다른 화폭에, 2·4·6대왕이 또 다른 화폭에, 8·10대왕이 또 다른 화폭에 나눠져 그려져 있다. 이번에 환수된 시왕도는 이 가운데 2·4·6대왕도, 3·5대왕도, 9대왕도로, 전체 4화폭 10대왕 가운데 3화폭 6대왕을 환수한 것이다. 이 가운데 2·4·6대왕도는 복원처리를 거쳤지만 나머지 3점은 박락과 변색 등 일부 훼손돼 복원처리가 필요한 실정이다.

나머지 4점의 시왕도는 미국 내 다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신흥사 등은 추가 환수를 통해 시왕도를 4화폭 10대왕 완전체로 복원해 보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부처님의 깨달음과 설법을 안정감 있는 구도위에 한 폭의 불화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채색은 원소장처를 떠나 수리과정에 이르기까지 변색과 박락 등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붉은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하면서도 파스텔톤의 중간색을 사용함으로써 차분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준다. 특히 강원도의 현존 후불화 가운데 가장 시기가 올라갈 뿐만 아니라 불화의 규모와 화격에 있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수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신흥사는 10년 전부터 영산회상도 환수를 준비해왔다. 특히 조계종과 함께 20151월 미국 라크마 측에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반환을 공식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능인사 주지 지상스님을 미국 라크마에 파견하는 등 여러 기관과 함께 수차례 협상과 세미나, 영상물 홍보를 통해 성보문화재 환수의 원력과 정당성을 알렸다.

이같은 힘겨운 노력에다가 신흥사 경판을 되돌려준 락웰 씨의 1954년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이 더해지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조계종과 라크마가 616일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반환을 위한 MOU를 체결한 것이다. 이어 미국 LA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9600km를 날아온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가 729일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함으로써 성보를 무사히 환수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신흥사와 조계종, 강원도, 속초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 등 불교계와 지자체, 정부기관, NGO 등이 협력해 일군 값진 성과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모범 사례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가 주도해 문화재 환수 사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평가받고 있다.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환수에 앞장서 온 지상스님(인천 능인사 주지)불교문화재는 문화재 이전에 종교적 예경의 대상인 성보인 만큼 수장고가 아닌 원소장처 법당에 있을 때 그 가치가 가장 빛나기 마련이라며 아직 되돌아 오지 못한 시왕도 4점을 비롯해 불법반출된 성보를 환수하는 일에도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는 곧바로 불교중앙박물관으로 이운됐다. 두 성보는 1달 여 동안 보존상태 등을 점검받은 뒤 829일 원소장처인 신흥사로 66년만에 환지본처의 길에 올랐다.

신흥사는 829일 경내 극락보전에서 회주 우송스님과 주지 지혜스님 등 신흥사 대중 스님과 불자,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흥사 영산회상도·시왕도 이운식을 갖고 성보 환수를 부처님께 고했다. 이운식 후에는 신흥사 유물기념관 수장고로 성보를 이운해 보존상태와 향후 추가 보존처리 등에 대해 점검했다.

특히 신흥사는 이날 귀국 환영법회에 이어 신흥사 유물기념관에서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를 일반대중에게 공개하는 특별전시회를 갖는다는 계획이다. 또한 보존처리 후 향후 문화재 지정 신청과 더불어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를 주요 전각에 여법하게 봉안해 불자들의 신심 증장을 위한 예경의 대상이자 정신적 귀의처가 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신흥사 회주 우송스님은 민족 분단의 불행한 역사 속에 본래의 자리를 떠나 타국에서 떠돌았던 성보들을 다시 모시면서 우리는 역사와 문화 앞에 겸허히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이제 이 성보들은 오래전에 그러했듯이 천년고찰 신흥사 도량과 불자들의 마음을 다시금 장엄하면서 우리의 신심과 미래를 환하게 밝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흥사 주지 지혜스님은 성보가 무사히 환수될 때까지 불교계와 지자체, 정부기관, NGO 등 많은 기관 단체들과 관계자분들의 지극한 서원과 정진이 있었다면서 이번 법회가 원력이 돼 앞으로 더 많은 성보들이 환지본처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발원한다고 말했다.
 

2010~11년 영산회상도 보존처리 모습(©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
2016년 3월 라크마에서 열린 제1차 반환 협상 시 영산회상도 친견 모습(©조계종 문화부)
7월2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고국에 도착한 성보에 예를 올리는 스님들.
8월28일 신흥사서 열린 영산회상도 이운식.

환지본처, 신흥사 영산회상도발간

66년만의 성보 환수 의미
향후과제 등 알기 쉽게 소개
1만권 제작 지역민에 배포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여느 환수 성보문화재보다 아픔과 사연이 많은 성보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에 의해 날카로운 칼날로 6개 큰 조각으로 훼손된 뒤 불법반출됐다. 먼 이국땅 미국으로 건너간 뒤 수십년 동안 돌돌 말린 채 다락방에 방치됐다. 이후 영산회상도를 인수한 라크마는 한국 CJ 그룹의 후원을 통해 한국 문화재 복원 전문 교수를 1년 여 동안 미국 현지로 초청해 복원불사를 전개했다. 이후 불교계 안팎의 각고의 노력으로 66년만에 환지본처에 성공했다.

이 짧은 몇 줄의 글로 담아내기엔 부족할 만큼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아픈 질곡의 역사를 이겨내야 했다. <환지본처, 신흥사 영산회상도-지금 여기 가장 빛나다>는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의 역사와 가치, 특히 환수과정을 스토리텔링으로 담아냈다.

150여 쪽 분량의 환지본처, 영산회상도설악산 신흥사와 한국전쟁 LA 카운티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하다 여섯 조각, 미국행은 여전히 수수께끼 LA 카운티박물관의 불화 복원 프로젝트 축제가 된 영산회상도 공개 전시의 날 LA 카운티박물관과 신흥사의 거리를 좁혀가다 미군 폴 팬처, 1954년 신흥사를 촬영하다 속초 시민 환수 운동에 활기를 불어넣다 1954년 미군이 무단 반출한 정황들 환지본처, 부처님의 약속 귀향의 큰 기쁨, 모두가 함께 누리다 등 11개 테마로 귀향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또한 유경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속초 신흥사 영산회상도의 조성 배경과 미술사적 의미를 주제로 한 학술논문,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 환수 관련 연표가 함께 수록돼 있다.

이 책자는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후원을 통해 발간했다. 특히 신흥사는 속초지역민 스스로가 지역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1만권을 발간해 속초지역민에게 법보시한다는 계획이다.

이상래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 이사장은 “20172월 단체를 발족해 환수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았지만 간절한 마음과 적극적인 노력 끝에 소중한 문화재를 되찾는 쾌거를 거뒀다고 밝혔다.

[불교신문3627호/2020년11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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