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명을 말하다

유철주 지음/ 사유수
유철주 지음/ 사유수

“적명스님은 한국의 대표 선승이셨습니다. 행(行)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고 후학 지도에도 힘을 다한 진정한 선지식입니다. 어떤 자리에서도 수좌들의 리더가 되어 주었던 적명스님 같은 분이 앞으로 다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힘든 시기에 한국불교를 이끌었고 수좌들에게 의지처가 되었던 적명스님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출가 60여 년 동안 선(禪) 수행에 몰두하며 오직 수좌로서 살다, 지난해 말 입적한 ‘영원한 수좌’ 적명스님을 떠올리는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원각스님의 기억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유철주 불교전문작가의 신간 <적명을 말하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에서 후학들을 지도해온 적명스님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불교계 원로, 중진 스님들이 ‘수좌 적명’의 삶과 수행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제가 죽비를 잡았던 철이었습니다. 해제 전날 자자(自恣)를 마치고 대중들과의 교감 끝에 스님을 큰방에 모시고 말씀을 올렸습니다. ‘대중의 이름으로 스님을 조실로 추대하겠습니다.’ 말씀을 듣던 적명스님은 물러서지 않으셨어요. ‘고우스님과 나는 이미 오래전에 조실 같은 소임을 맡지 않기로 약속을 했네. 만약 내가 조실을 안 해서 봉암사가 잘못된다면 하겠지만 우리 대중들이 이렇게 잘 사는데 그런 일이 있겠어?’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결국 스님을 조실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인제 백담사 무금선원 유나 영진스님)

적명스님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것은 2009년 대중들의 조실 추대를 고사하고 봉암사 수좌로 들어간 사실이다. 당시 스님은 “나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조실 말고 수좌로 살겠다’라고 분명하게 밝혔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스님은 후배들과 함께 큰방에서 같이 정진했고 함께 울력하고 함께 공양하며 철저하게 대중생활을 했다. 평생 대중을 떠나지 않고 살아갔기에 많은 수좌들이 존경하고 따랐다.

이처럼 적명스님은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걸어간 수행자다. “수행자는 수행 따로 행 따로 여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끝까지 지켜나갔다. 그런 확신으로 종단에 일이 있을 때면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때로는 행동도 불사했다. 이런 모습들이 자신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기에 많은 수좌들이 정신적인 대부로 모셨다. 그리고 산을 좋아한 스님은 평생 산에서 살다 산에서 가셨다. 수좌로 살다 수좌로 가는 것이 스님의 꿈이었던 만큼 어쩌면 스님의 꿈대로 된 것이다. 이 책은 꼿꼿한 수행자이면서 자유인을 꿈꾸었던 수좌 적명의 생애를 재차 확인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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