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가 설립한 나눔의집…위안부 피해자 인권회복 단초

아무도 나서지 않던 시절
피해 할머니 보듬어 치유
“역사에 남을 위대한 업적”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근현대사 속에서 쉽게 드러내지 못한 아픔의 역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반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강제적인 동원 사실을 증언한 피해자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피해자들을 껴안지 못했다. 용기를 낸 피해 할머니들이 가족들로부터 외면받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꺼린 정부는 위안부 피해 문제를 다루는데 소극적이었다. 이때 불교계가 피해 할머니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껴안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로 불리는 지금과 달리 당시는 정신대 문제라고 일컬어졌다.

불교계는 1990년 당시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던 불교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정신대 문제 해결에 뛰어들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가 꾸려져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정대협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던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인권과 생존 보다 정신대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

1992년 10월, 불교계는 당시 불교인권위원회(대표 월주스님) 주도로 사회와 가족들로부터 외면받는 피해 할머니들의 거처 ‘나눔의집’을 서울 마포교 서교동에 마련했다. 정부의 외면과 할머니들 보다 정신대 문제에만 집중했던 다른 단체들과 확연히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어떠한 지원도 없었던 나눔의집은 셋집살이를 전전하며 종로구 명륜동, 혜화동으로 옮겨 다녔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설움은 해방 50년이 지날 때까지 이어졌다. 1992년 6월 불교계를 중심으로 나눔의집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전국의 사찰과 불자들이 모금운동을 벌였다. 당시 조계종 종정 월하스님이 1억5000만원을 보시하고, 총무원장 월주스님이 동참하는 등 성금이 답지했다. 불교계가 주축이 되어 시설건립비와 운영비를 모은 끝에 1995년 지금의 경기도 광주에 자리를 잡게 됐다. 설립 후에는 조계종에서 ‘깨달음의 사회화 기금’과 종단 예비비, 후원금 등을 모아 2억5000만원을 출연했다.

나눔의집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거처이면서 여성인권운동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일본의 위안부 만행에 대한 진상을 알리고 낱낱이 기록함으로써 전쟁 피해자 명예회복과 역사 바로세우기 중심이었다. 최근 운영상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적지않은 비판과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보듬은 불교계의 공로와 업적까지 묻힐 수는 없다.

1990년대 이후의 불교계 시민운동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문제에 불교계가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처럼 소외받는 이들과 사회적 약자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드러난 이주노동자 인권문제와 노동 분야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이주노동자의 급증과 함께 시작된 불교계의 이주민 인권활동은 부천 석왕사, 오산 대각사, 구미 마하붓다사, 광주 선덕사 등 지역 사찰을 중심으로 단체를 구성해 활동을 전개했다. 2006년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가 결성되면서 불교계의 이주민 활동도 본격화됐다. 미얀마인 사찰과 스리랑카인 사찰, 재한줌머인연대 등 이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커뮤니티를 구성한 점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이같은 활동을 기반으로 매년 부처님오신날 열리는 연등회에 국가별 이주민들이 행렬을 함께 할 정도로 이주노동자 인권에 대한 인식도 성장했다. 

반면 노동 분야에 있어서는 조계종단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2012년 출범한 조계종 노동위원회는 다양화되고 전문화된 우리 사회의 흐름에 맞춰 종단의 대사회적 역할을 늘리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활동의 대표적 단체다.

노동위원회의 활동은 노동분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약자를 위한 보호와 지원이었기 때문에 2016년 사회노동위원회로 확대 개편됐다. 활동영역도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해고노동자 문제 뿐만 아니라 소외계층 빈곤 문제, 성소수자 차별 문제, 인권, 장애인 등으로 다양화됐다. 노동위원회로 시작한 사회노동위원회의 활동은 불교와 종단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불교계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불교신문3625호/2020년10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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