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
이봉주

명절 때 고향을 방문하는 것은 우리의 오랜 풍습이다. 해마다 명절이면 민족대이동이 시작된다. 평소보다 2~3배는 더 시간이 더 걸리는 도로를 가야 하는 귀향길, 열차나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 돗자리를 깔고 밤새 새우잠을 자며 날 새기를 기다리던 마음은 고향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설렘이었을 것이다.

추석엔 적적하던 시골 마을에 어린아이 웃음소리로 생기가 돌고 아낙들은 마주 앉아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는다. 그리고 오래 못 만났던 옛 친구들과 만나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추석 민심이란 말도 나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을 받아 대놓고 부모들이 자식들의 고향방문을 거절하는 분위기였다. 올 추석엔 여기저기 마을마다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아들 딸 며느리야, 이번 추석엔 안 와도 된당께!’ ‘불효자는 “옵”니다’ ‘아범아 추석에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용돈만 보내라’ 모두가 누군가의 고향 마을에 걸린, 고향으로 자식들을 오지 말라고 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플래카드다.

정부에서도 적극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예전에 고향방문을 환영하는 플래카드와는 대조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형님과 나는 서울서 직장 생활하는 자식들을 오지 말라고 하고 형님과 둘이서 쓸쓸하게 조상님 제사를 지냈다.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했는데 코로나19는 오랜 한가위 풍습마저 앗아가 버렸고 벌초 풍경도 바꾸어 놓았다. ‘애들아 벌초는 애비가 한다. 너희는 오지 말고 편히 쉬어라 잉~’ 어느 마을에 걸린 플래카드다. 우리도 일가친척들이 날을 잡아 함께하던 벌초를 올해는 집안 별로 분담을 하고 젊은이들은 부르지 않고 조상님 묘를 벌초했다. 

그러고 보면 올해는 명절 증후군만큼은 적을 듯하다. 문득, 몇 해 전에 어느 마을에 걸렸던 플래카드가 생각난다, ‘에미야~~어서 와라 올해 설거지는 시아버지가 다 해 주마!’ 그러고 보면 오지 말라는 플래카드나 오라는 플래카드나 읽는 이들이 가슴 저려오는 것은 매 한 가지다.

그래도 돌아오는 설 명절에는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어서 와라’ ‘환영합니다’라고 쓴 글귀가 들어간 익살스러운 플래카드들이 마을마다 만국기처럼 펄럭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교신문3624호/2020년10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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