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말라 선도 악도

서도(書道) 수행의 참고 자전에 착할 선(善)은 160여자가 소개되고, 미워할 악(惡)도 100여자의 형상이 나온다. 이 많은 형상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착하고 악한 일이 이렇게 다르고 많은가, 한번 틀어 앉아 참구해 볼 일이다. 착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라면 그 행위는 무엇일까? 선과 악의 해탈론도 선과 악의 혼합론도 순자, 맹자에 들어 선과 악이 사람의 본성과 결부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은 서예 전시장에서 귀중하게 대접 받는다. 불자께서는 혜능선사와 혜명과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떠 올리기만 하여도 지금 여기 목전(目前)에 펼쳐지는 생생한 진검승부를 느낄 것이다. 

공부하면서 언제 이런 행운의 기회를 만날 수 있을까? 선도 악도 옳고 그름도 아름답고 속됨마저 벗어버린 본래의 모습으로 천연 그대로 더하지 않는 무념의 상념 속에서 쓰는 글씨는 어떠할까? 생각으로 갈 수 없는 그 묘각(妙覺)의 자리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마음만 헐떡일 뿐이다.

“조용히 생각하고 생각하되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청천벽력 같은 한 말씀, 미망을 깨우치는 법문, 혜명은 수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머리가 깨지는 그 자리, 가사와 발우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시비와 선악이 정의 없이 난무하고 있다. 서예판도 마찬가지다. 부처의 법은 본래법이 항상 적멸한 상이니, 불자가 이 도리를 행하여 요달(了達) 한다면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선도 악도 아닌 공(空)한 도리를 안다면, 눈이 가는 자리마다 부처 꽃이요, 호흡이 이르는 자리마다 자비 꽃 일 것이다. 나의 서도 수행이 이를 마지막 구경(究竟)에는 선과 악 양극단을 모두 놓아버린 공(空)의 이치 담고 서법마저 놓아버린 그 자리에 홀연(忽然)히 깨우침의 붓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붓이 무겁다. 

[불교신문3624호/2020년10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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