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사 불화기행] <19> 예산 서원산 보덕사 극락전 불화
[한국 산사 불화기행] <19> 예산 서원산 보덕사 극락전 불화
  • 신광희 중앙승가대학교 연구교수
  • 승인 2020.10.30 09:13
  • 호수 3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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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효심과 원력 담긴 ‘명작’ 불화
아미타설법도, 1865년, 마본채색, 130.5×186.5cm
아미타설법도, 1865년, 마본채색, 130.5×186.5cm

흥선대원군의 보덕사 창건

충남 예산군 덕산면 서원산(書院山) 중턱에는 보덕사(報德寺)가 자리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본사 수덕사의 말사 중 하나이다. 정갈하고도 아늑한 절집이다. 절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은덕(恩德)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절’이다. 바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부친 남연군(南延君)을 위해 창건한 절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아버지이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국왕을 대신해 10년간 섭정을 하면서 국정을 장악했고 그 후에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조선말 최고의 권력가이기도 하다.

대원군은 본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南延君)의 묘를 풍수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서 1846년 덕산(德山) 가야사(伽倻寺) 터로 이장했다. 지관(地官)이 조선 최고의 명당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종 즉위 직후에 묘 인근에 보덕사를 창건했다. 부친의 극락왕생을 빌고 묘를 지키는 ‘능침사(陵寢寺)’로 삼고자 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황현(黃玹)이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에도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갑자년(1864) 이후 국비를 들여 절을 짓고 이름을 보덕사(報德寺)라고 했다. 토목(土木)에 금을 칠하여 극히 웅장하고 화려하게 장엄했다. 그리고 논밭도 하사하고 보화도 후하게 주었다”라고 쓰여 있다. 이 내용은 흥선대원군이 보덕사를 원찰로서의 위상과 품격을 갖추기 위해 많은 공력을 쏟았음을 엿보게 한다. 대원군은 보덕사의 현판도 친히 썼다. 현판은 사찰 대방(大房)에 걸려 있다. 
 

남연군 묘.
남연군 묘.

부친 남연군을 위한 불화 불사

1864년 절을 짓고 다음 해인 1865년 보덕사에서는 주불전인 극락전에 아미타여래도, 지장시왕도, 현왕도, 신중도를 제작, 봉안했다. 이 역시 흥선대원군의 발원, 시주로 진행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장시왕도> 하단에 마련된 화기란에 상세히 명시했다. “동치(同治) 4년인 1865년 7월에 충남 덕산군 보덕사의 불상과 각각의 불화들을 제작해 봉안한다.

대시주자는 경성(京城) 내수동(內需洞)에 사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경진생(庚辰生) 이씨(李氏)와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 무인생(戊寅生) 민씨(閔氏)이다”라는 내용이다. 다른 불화에는 기록이 따로 없지만, 화기에도 ‘여러 점의 불화’를 함께 제작했다고 쓰여 있고 화풍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1865년에 같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7월에 극락전 내 불상과 불화 불사가 있을 때, 흥선대원군이 이곳에 머물고 있었던 것 같다.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근거는 <고종실록>에서 찾을 수 있다. <고종실록> 권2에 따르면, 대원군은 남연군묘에서 별다례(別茶禮,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드리는 차례)를 행하기 위해 1865년 7월부터 8월 말까지 덕산(德山)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이 시점이 불사가 이루어진 시기와 일치한다. 
 

지장시왕도, 1865년, 마본채색, 126.5×184.5cm
지장시왕도, 1865년, 마본채색, 126.5×184.5cm

아미타불 지장보살 시왕 모셔 

극락전 내 정면 중앙에는 아미타설법도, 그 우측에 지장시왕도, 중앙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신중도와 현왕도가 걸려 있다. 여래도, 보살도, 그리고 호법신중도까지 삼단(三壇) 위계에 맞게 고루 갖추었다. 그리고 불화의 주제만 보아도 남연군의 영가 천도와 극락왕생을 빌기 위한 용도임을 알 수 있다. 이 불화들은 영파당 경훈(影波堂 敬焄), 고월당 법인(古月堂 法仁), 학능(學能), 총 세분의 스님이 동참해서 그렸다.

주제에 따라 스님들이 세부적으로 각기 역할을 나눠 그렸을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협의하고 그린 듯 전체적인 화풍은 대체로 유사하다. 예를 들면, 모두 옷에는 붉은색을 위주로 채색했고 두광(頭光)에는 녹청색을, 병풍의 뒷면에는 군청색을 채색한 점, 불보살의 신체에는 짙은 황토색으로 전면을 칠하고 그 외 존상들은 백색을 위주로 한 점, 얼굴 윤곽선과 주름선은 붉은색으로 처리한 점, 그리고 화면 상단 구름의 형상과 표현 등이 유사하다. 

그림을 그린 스님들의 행적이 크게 알려져 있진 않지만, 당시 최고 권력자 흥선대원군 발원 불화니 만큼 기량이 우수한 분들이 초빙되었던 것 같다. 우선 필선이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고 존상들의 자세와 시선이 매우 유기적이며 표정도 불화의 주제에 잘 부합한다.

예를 들어 ‘지장시왕도’와 ‘현왕도’는 명부계 존상들의 성격에 맞게 눈매 하나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하며 ‘신중도’의 제존 역시 이목구비의 표현은 물론 옷 주름선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이 명료하고 단정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아미타설법도’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된다. 
 

신중도, 1865년, 마본채색, 125.5×184.5cm
신중도, 1865년, 마본채색, 125.5×184.5cm
현왕도, 1865년, 마본채색, 125.0×97.0cm
현왕도, 1865년, 마본채색, 125.0×97.0cm

새로운 명부계 불화, 현왕도

보덕사 극락전 불화 중에는 독특한 주제의 불화가 한 점 있다. 바로 현왕도(現王圖)이다. 현왕도란 염라천자(閻羅天子)의 미래불인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를 주존으로 한 불화이다. 망자 사후 3일에 거행되는 천도재인 현왕재(現往齋)를 위한 명부계 그림으로, 조선 후기에 활발히 제작되었다. 현재 100여 점이 알려져 있다. 

현왕재는 시왕 십재(十齋)에서 분화한 의식이다. 현왕재의 회주(會主)가 보현왕여래이다. 보현왕여래의 성격은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에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보현왕여래는 석가모니가 미래세(未來世)에 성불할 것이라 수기한 염라대왕의 불격(佛格) 명호로 규정되어 있다. 염라대왕 신앙이 확대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시왕도 중 제5 염라대왕도와 현왕도를 비교해 보면 왕의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옷깃이 둥글고 소매가 넓은 곡령대수포(曲領大袖袍)를 입고 대대를 두른 채 머리에는 경전이 올려진 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 같다. 다만, 염라대왕도의 하단에는 지옥 장면이 묘사되어 있지만, 현왕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조선시대 현왕 관련 의식문은, 제반문(諸般文)의 ‘성왕청(聖王請)’이나 현왕재의문(現往齋儀文)에서도 알 수 있듯이, 16세기부터 확인되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신앙의례의 성행과 더불어 그림도 제작되기 시작하는데, 현존하는 그림들은 18세기부터 확인된다. 기림사 현왕도(1718), 선암사 현왕도(1730), 율곡사 현왕도(1751), 통도사 현왕도(1775), 고양 원각사 소장 현왕도(1780) 등이 대표적이다.

보덕사 현왕도에서 현왕은 붉은색 옷을 입고 7곡 병풍을 배경으로 홀을 들고 앉아 있다. 머리에는 <금강경>이 올려진 관을 쓰고 있다. 현왕의 앞에는 좌협시인 대륜성왕(大輪聖王)이 망자의 문서를 가지고 와 올리고 있으며 우협시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그 내용을 현왕에게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현왕은 고개만 좌측으로 돌려 대륜성왕의 보고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보처의 주변으로는 판관과 동자 동녀가 시립하고 있다. 현왕은 긴 수염을 늘어뜨린 채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현왕뿐만 아니라 좌우보처와 판관들의 눈매도 매우 날렵하다. 현왕을 비롯한 존상들의 구성과 이름은 제반문, 현왕재의문, 또는 요집문(要集文) 등에 근거한다. 

흥선대원군은 많은 사찰의 중수를 지원하고 편액과 주련을 써 주기도 했으며, 불상과 불화의 시주에도 동참했다. 그가 시주 동참한 불화만 보더라도 보덕사, 안성 운수암, 남양주 흥국사, 서울 화계사, 수원 청련사 등 다수이다. 이 중에서 흥선대원군 내외가 단독으로 발원, 시주한 경우는 보덕사뿐이다.

다른 절의 불화들은 대원군 일가(一家) 혹은 사대부 관료나 상궁 등, 세도가들의 조력이 있었다. 그만큼 보덕사와 극락전 불화는 흥선대원군의 효심과 애착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걸맞게 화격도 뛰어난 조선말 명작 불화들이다. 

[불교신문3624호/2020년10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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