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법난이 발발한지 올해로 40년을 맞았다. 1980년 10월27일 당시 신군부가 만든 ‘합동수사본부 합동수사단’이 불교 정화라는 미명아래 종단의 스님과 불교 관련자 153명을 강제 연행해 고문하고 모욕을 가한 것도 모자라 3일 뒤인 10월30일 포고령 위반 수배자 및 불순분자를 검거한다는 명목으로 군 경 합동 병력 3만2076명을 사찰 및 암자 5731곳에 투입해 법당을 침탈하고 스님을 강제로 끌고 간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례가 없는 훼불사건이다. 

종교가 다른 이민족의 침입에서도 이처럼 극악한 종교 탄압을 찾아보기 힘든데 한 나라에서 아무런 이유도 명분도 없이 같은 국민인 스님을 연행하여 고문하고, 1700여 년 내려온 민족의 자랑이며 세계적 문화유산인 사찰에 군화 차림으로 총기를 들고 군사작전 하듯 쳐들어갔으니 천인공노할 만행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어디 이들 뿐인가, 신군부가 불러주는 대로 방송과 신문은 앞 다퉈 스님을 파렴치범으로 묘사하고 사찰은 범죄자 소굴로 낙인 찍었다. 우리 내부도 동조했으니 통탄할 일이다. 신심이 돈독하고 불교에 밝다는 청년 불자들 중 일부 법조인과 군법사가 10·27법난을 주도한 보안사와 사회정화위원회에 참석해서 동조했음이 나중에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40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다. 10·27 법난을 기획하고 주도한 최종 책임자도 드러난 바가 없다.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대통령을 역임한 노태우 씨는 자서전을 통해 참회했지만 행정 사법 입법 3권을 장악한 최고 권력자 전두환 씨는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 엄청난 일을 최고 권력자 지시나 허가 없이 벌일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법한데 그는 여전히 발뺌 중이다. 계엄사령부가 저지른 10월30일의 전국 사찰 침탈은 더 많은 사실이 감춰져 있다. 최초 기획자가 누구며 군을 동원하는데 이용된 기획서 작성자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10·27법난으로 인해 불교는 만신창이가 됐지만 스님들은 좌절하거나 남 탓하지 않고 종교와 사회, 국가의 역할, 수행의 목적, 개인 해탈과 자비 등 종교 사회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는 기회로 삼아 사회민주화 불교현대화 종단 자주화 꽃을 피웠다. 개인 해탈을 추구하면서도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지혜와 자비를 동시 구현하는 한국불교 전통이 이러한 고민과 노력을 통해 형성됐다. 

지난 40년이 10·27법난의 충격을 극복하는 외향과 성장의 역사였다면 앞으로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성찰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40년 간 포교 교육 사회 복지 불사에 헌신하며 세계에서 유례 없는 대승교단을 일궜다. 일찍이 한국불교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성과다.

하지만 양적 성장에 걸맞게 내부적으로 정법과 계행으로 단단하게 속을 채웠는지 묻는다면 그렇다고 자신있게 답하지 못한다. 잘 정비된 제도, 훌륭한 교육 체계, 폭넓은 복지도 정법의 틀 위에 계율이라는 튼튼한 기둥 위에서 이뤄져야 무너지지 않는다. 10·27법난 4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가 가야할 유일한 길이다.

[불교신문3624호/2020년10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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