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 40주년, 불교시민사회운동史 ④ 인권(中)
10·27 40주년, 불교시민사회운동史 ④ 인권(中)
  • 이성수 기자
  • 승인 2020.10.28 17:47
  • 호수 3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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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제 해결 팔 걷어붙여”

인권위 발족…불교 사회참여
“중도·화쟁·평등사상 밑받침”

1990년 11월 불교인권위원회(공동위원장 월주스님, 한상범, 용태영 변호사)는 창립법회를 봉행하고 ‘생명존중’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10·27법난 발생 10년만의 일이다. 이에 앞서 1990년 9월 제17교구본사 금산사에서 열린 정토구현승가회 정기수련대회에서 ‘불교와 인권’이 주제로 다뤄지는 등 10·27법난을 계기로 각성한 불교인의 인권운동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인권운동에 기폭제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1990년 10월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保安司) 사찰(査察) 대상 명단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정계, 학계, 종교계, 노동계, 언론계, 재야법조계, 재야 등 1303명의 사찰 대상자 가운데 불교계는 월주, 청화, 목우, 법성스님과 이용성, 이영철 씨 등 6명이 포함되었다.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사찰 폭로는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불교계는 인권문제에 관심을 더욱 갖게 됐다.

불교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월주스님은 1990년 11월25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활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인간존중 차원에서 부당한 인권탄압 사례 예방과 그에 대한 법률구조사업, 그리고 반(反)민주적이고 비(非)인권적인 법률의 개정작업 등에 우선 역점이 두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불교가 더 이상 종단 내부의 문제에만 함몰되지 않고 시야를 넓혀 중생이 살고 있는 현실 사회의 부당한 현안을 해결하는데 앞장서겠다는 다짐이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가 곧 생명존중의 사상이라며 인권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월주스님의 입장 표명은 교계 안팎에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90년 12월25일자 한겨레신문은 ‘종교계 결산’ 기사에서 “불교인권위의 발족으로 인권문제에 대한 불교계의 본격적 사회참여의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듬해 불교인권운동의 활동 반경을 구체화 됐다. 1월17일 불교법조인회, 한국교사불자연합회 등과 ‘공정한 지자제(地自制) 선거’를 위해 시민운동에 동참할 것을 선언하고 공정선거감시단 구성을 제의했다.

곧 이어 ‘공명선거추진불교도시민운동연합’ 결성식을 가졌다. 1991년 5월 학생과 노동자들의 분신이 이어지면서 불교인권위원회는 민족자주통일불교운동협의회 등 불교계 단체들과 함께 ‘생명존중과 인권수호를 위한 범불교 시국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시민사회단체와 보조를 맞췄다. 

이밖에도 불교인권위원회는 △기금마련을 위한 일일 찻집 △윤석양 등 군(軍) 양심수 지원을 위한 하루 찻집 △소식지 <불교인권> 창간 △창립 기념강연 및 문학의 밤 △소외된 이웃과 실종자를 위한 기원 큰법회 △불교인권상 시상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불교인권운동의 저변을 확장하고 불자와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조직의 외연도 넓혔다. 여성분과위원회와 부산불교인권위원회를 발족해 여성인권과 지역의 인권 현안에도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불교인권운동을 전국적인 단위에서 진행하려는 취지였다. 

1992년 5월10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월주스님은 “사바세계의 사회고(社會苦) 해결에도 불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불교의 동체대비(同體大悲)사상, 중도·화쟁사상, 평화·평등사상이 밑받침되어야 한다”고 불자와 국민의 관심과 동참을 호소했다. 

불교계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할머니들을 지원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92년 6월 할머니들의 공동주거공간 마련을 위한 모금을 전개하여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며 오갈 곳 없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불교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불교계가 나선 것이다. 정부나 시민단체에서 크게 관심을 나타내지 않던 시절을 감안하면 불교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지원은 결단이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10·27법난은 교권(敎權)만 침해 받은 것은 아니었다. 부당한 침탈로 불교계가 입은 상처는 중언부언(重言復言)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극심하다. 또한 법난으로 육체적, 심리적 상처를 입은 스님과 재가불자의 인권(人權) 또한 무참하게 짓밟혔던 것이 사실이다. 법난의 상처를 치유하며 소외된 이웃과 위안부피해자할머니 지원을 시작한 불교인권운동은 경제정의실현, 북한주민돕기, 재외동포지원, IMF실업자돕기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국가사회 발전의 초석(礎石)을 놓았다.

[불교신문3623호/2020년10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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