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추와 닮은 수심의 수…가을엔 수심?
송수정서 차 한잔 마시며 근심 내려놓다


강원 율원 경학원 선원 전전하며 만행해도
장애없이 공부…경전 위신력에 의한 충만함

선행스님

근심 걱정으로 답답한 심정이 수심이겠다. 수심(愁心)의 수(愁)자는 가을(秋)을 연상시키기에 지금의 상황을 말하는 것 같아, 가뜩이나 힘든 시기에 수심을 거론해서 생채기를 내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요즘 불교대학에서 가을의 정취를 감상하며 걷기 명상을 하고 있다. 걷기에 앞서 노래도 한곡 한다. “가을 하늘 드높은 곳에 내 사연을 전해 볼거나….” 산문까지 2km 남짓 거리를 왕복하면 두 시간 강의 일정과도 맞먹는 시간대라서 안성맞춤이다. 중간에 송수정(送愁亭) 곧 ‘근심을 내려놓는 곳’이라는 쉼터에서 차와 함께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압권이라는 입소문으로 여타의 반들도 동참하고 있다. 게다가 가을을 수놓은 듯이 국화축제로 장식한 국화꽃의 장엄은 마음을 더욱 여유롭고 아름답게 한다.

출가한 계절이 가을이다. 낙산사에 은사 스님을 소개 받고 출가했어도 주변에서 이렇다 할 운력에 대한 말이 없어, 마침 도량에 흩날리는 낙엽이 눈에 들어와 아침 공양 후 넓은 도량을 두 시간 정도 쓸다 보니, 자연스레 오전 일과가 되었다. 예전에 어느 행자는 마당을 쓸면 은사 스님은 도로 낙엽을 흩뿌려, 무려 열두 번을 반복하던 순간 ‘한 소식’을 했다고 한다. 나의 근기는 두 달여 낙엽을 쓸고서야 동안거 결제일에 임박하여 은사 스님으로부터 삭발을 했다.

수계 후 선운사 강원의 강주 소임을 보던 2009년도에는 매월 관음재일마다 꼬박 1년 동안 낙산사에 왕림하여 법문을 했다. 왕복 거리는 1000km 였다. 당시 뒤늦게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던 터였기에 어느 때는 법문을 마치고 곧장 전남 광주에 자리한 대학교로 직행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연재하고 있는 분량으로 그때도 1년 기약으로 매주 <선방 이야기>라는 제하(題下)에 원고까지 썼다. 참 빠듯한 일정이었지 싶다. 그해 연말 쯤 되어서는 평소 음성의 절반에 미칠 정도의 기력이었다. 다행히 애타듯 원고에 매진한 일로 피부과에 진료를 받은 일 외에는 별다른 장애 없이 회향을 했다. 

낙산사는 의상스님이 창건한 사찰로서, 창건 설화에 걸맞게 영험한 기도도량이다. 거기에 더하여 의상스님은 <화엄경>의 중흥조라 할 수 있는데, 그때의 인연이었던지 수계 후 <화엄경>을 몇 차례 공부하게 되었다. 강원을 졸업함과 동시에 당시 방장이신 월하 노스님의 특별한 배려 속에, 사중과 강원 대중 그리고 강주 스님의 한결 같은 협력으로 <화엄경> 현담과 경문을 2년여에 걸쳐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6년 종단에서 전문 강사 양성을 위한 삼장(경·율·론) 교육기관을 은해사에 개원했는데, 3년여 <화엄경>을 중심으로 여타의 경전을 공부했다. 2005년도 백양사 강원의 강주로 부임하여 4년여 지내는 동안 매년 <화엄경> 경문 전체를 공부하고 세 반이 졸업했다.

그렇게 몇 차례 <화엄경>을 보았지만, 막상 <화엄경>에 대한 개요나 내용을 정리한 이론적 정립은 미약하다. 다만 경전 경부에 대한 확신은 분명하다. 학문적이기보다는 신앙적인 신심으로 공부했기에, 경전의 위신력에 의한 마음속으로 느끼는 충만함이다.

그동안 강원, 율원, 경학원, 선원을 전전하듯 만행하면서도 이렇다 할 장애 없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위신력에 의한 확신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다고 본다. 마침 불교대학에서 특강으로 법성게(法性偈) 강의를 준비하면서 새삼 <화엄경>의 깊은 도리를 음미하며 미진한 마음을 채워주고 있다.

완연한 가을이다. ‘오동잎 하나가 진다 해서 가을이 온 것이 아니다’하는 말이 무색하게 형형색색으로 물든 낙엽이 지고 있다. 수심도 그 속에 실려 보내기를 기도하는 바이다. 

[불교신문3623호/2020년10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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