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총스님에게 듣는 서원이야기] <39> 문수보살십대원(文殊菩薩十大願)④
[혜총스님에게 듣는 서원이야기] <39> 문수보살십대원(文殊菩薩十大願)④
  • 혜총스님 부산 감로사 주지 · 실상문학상 이사장
  • 승인 2020.10.28 17:25
  • 호수 3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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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은 어디서 오셨는가’
지혜는 곧 인욕의 길입니다


보살은 중생 평등하게 바라봐
천대나 박해 문제 삼지 않아
오직 중생교화만 고민할 뿐
혜총스님
혜총스님

⑤ 나를 천대하고 박해한 사람도 보리심을 내게 하리다. 

문수보살님의 다섯째 서원은 만약 어떤 중생이 문수보살님을 천대하고 박해하거나 문수보살님을 대할 때 부끄러워하거나 공경하거나 공경하지 않거나, 또 필요하게 여기거나 필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문수보살님을 보거나 보지 않아도 이들 모두가 보살님과의 인연으로 보리심을 내게 하겠다는 서원이다. 

보살심은 무량심(無量心)이다. 문수보살님을 천대하고 박해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필요하게 여기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문수보살님 입장에서는 모두 교화해야 할 중생이다. 그러니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하려는 것이다. 

<문수사리문보리경>에 보면 문수보살이 어떤 것을 보살의 지혜라 하는지 묻는 월정광덕 천자에게 “지혜는 곧 인욕의 길입니다” 라고 답한다.

인욕행이 없이 올바른 지혜를 이룰 수 없다는 말씀이다. 천대하고 박해하는 따위는 보살에게는 하등 문제가 되지 못한다. <금강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인욕선인(忍辱仙人) 시절에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여의었기 때문에 가리왕에게 인욕바라밀을 실천할 수 있었다고 하시는 대목이 나온다.

이미 보살은 상(相)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중생심이 작용하지 않는다. 천대하거나 박해하거나 공경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하지 않고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바라본다. 다만 교화할 중생만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부처님의 지견을 알게 하고 보리심을 일으키고 마침내 윤회하는 고통의 인연을 벗어나 진정한 해탈의 세계로 이끌 것인가 하는 것이 보살의 화두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보살도를 닮고자 인욕하면서 지혜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⑥ 살생을 업으로 하는 자나 재물에 욕심이 많은 자까지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하리다. 

문수보살님의 여섯 번째 서원은 살생과 재물욕에 눈 먼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이다.

낚시질이나 백정이 되어 고기를 팔고 사냥하면서 살생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에게는 원통하게 죽임을 당한 원귀(寃鬼)가 앞에 나타나 또 다시 살해하는 인연을 짓게 돼 그 살생업이 그치지 않는다. 원한은 몸을 바꾸어 윤회하면서 태어날 적마다 서로 보복하느라고 죽이려는 마음이 치성하고 뉘우칠 줄을 모른다.

옛날 까마귀와 뱀의 전생 설화를 보면, 배나무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날개를 퍼덕이는 바람에 배가 독사의 머리위에 툭 떨어졌다. 갑자기 얻어맞은 뱀은 화가 나서 까마귀를 향해 독을 뿜어댔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억울하게 죽게 된 까마귀는 원한을 품었고 뱀도 죽을힘을 다해 독을 뿜은 까닭에 죽어 버렸다. 까마귀와 뱀은 죽어서까지도 원한이 풀리지 않았다. 

뱀은 죽어서 멧돼지가 됐고 까마귀는 암꿩이 됐다. 멧돼지가 알을 품던 암꿩을 죽이자 암꿩은 다시 사냥꾼으로 태어나 멧돼지만 죽이려 했다는 설화다. 참으로 슬픈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인연뿐 아니라 물욕에 눈멀어 죄업을 일삼는 중생마저도 모두 보리심을 내게 하겠다는 서원이다. 

[불교신문3623호/2020년10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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