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종단 지도자들이 처음으로 제주 4·3 평화공원 위령탑에 참배하고 의미를 되새겼다. 조계종 천태종 진각종 태고종 등 한국불교 주요 종단이 모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10월20일부터 23일까지 제주도를 찾아 평화공원 위령탑을 참배하고, 유족 대표, 제주지역 불자 정관계 인사 등을 만나 불교 차원의 지원 방안을 협의했다. 

조계종 등 주요 종단 대표자가 함께 4·3 평화공원을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48년 정부 수립 과정에서 일어난 좌우대립으로 발생한 4·3 사건으로 2만5000~3만 명 가량 도민이 희생당하고, 가옥 4만여 가구가 불타는 참사를 입었다. 오랫동안 거론도 못하던 제주 사건은 진상조사, 특별법 제정, 대통령 사과, 법정 기념일 지정과 추념식 봉행 등으로 이어지며 도민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졌다. 

불교계도 당시 큰 피해를 입었다. 제주도민의 피난처 역할을 했던 사찰 35곳이 불타고 16명의 스님이 희생당했다. 제주불교 중심이었던 관음사가 4·3 사건 당시 토벌대와 입산 무장대가 관음사를 중심으로 첨예하게 대치하는 과정에서 모든 전각이 전소됐다. 생존자 증언에 의하면 토벌대가 방화했다는 사실 조차도 발설 못하게 숨겨야 할 정도로 관음사 방화는 이유도 정당성도 없었다. 고문당한 관음사 스님이 있는가 하면 금봉사 상봉스님은 쫓기는 목동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6발의 총탄을 맞고 입적했다. 

제주도민이 위기 시 사찰을 피난처로 삼은 것은 일제시대 사찰은 민족 독립운동의 근거지며 스님은 독립운동가로 도민들의 존경과 신뢰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역사가 무오법정사항일운동이다. 1918년 10월7일 서귀포 법정사에서 일본제국의 통치를 반대하던 김연일 방동화 등 스님들이 중심이 돼 법정사 신도와 민간인 등 400여 명이 무장하여 2일 동안 조직적으로 일본에 항거한 항일운동이다.

제주도 내 최초 최대 항일운동으로 3·1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등 민족항일의식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선구적 역할을 한 자랑스러운 독립운동 역사다. 종단 지도자들이 이번 제주 방문에서 법정사항일투쟁 유적지를 찾아 독립투쟁의 자랑스런 역사를 되새긴 것도 이 때문이다. 

제주불교계는 이처럼 민족독립에 앞장서고 존경 받았지만 일제와 전쟁을 겪으며 사찰과 스님이 큰 피해를 입어 오랫동안 회복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제23교구본사 관음사를 중심으로 여러 사찰과 스님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다시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이번 종단 지도자들의 제주 방문과 역사 현장 탐방은 제주불교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제주 4·3사건은 앞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뉜 갈등을 수습하고 서로 다친 마음을 치유하여 화합 상생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 남아있다. 정부 차원에서 진상을 조사하고 보상하는 정부의 시간을 지나 마음을 다스리고 화해를 돕는 종교의 시간이 다가온다. 오랫동안 제주도민의 안녕과 건강을 빌며 고락을 함께 했던 불교가 나서야할 몫이다. 종단지도부도 이번 제주 방문을 계기로 제주불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지원하기를 바란다.

[불교신문3623호/2020년10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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