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었으니
공양받기에 부끄럽지 않은지
잘 살펴볼 일이다
이 가을날에 대추 한 알
밤 한 알의 의미와 무게가
실로 크고 무겁기만 하다
어느 가을바람에
밤송이 하나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청천벽력과도 같은
울림으로 함께 한다

진광스님
진광스님

예전에 행자입문교육을 마곡사 옆 한국문화연수원에서 봉행했을 때의 일이다. 행자님들이 입문교육을 마치고 각자의 절로 돌아갈 적에 농협에서 정안밤을 단체로 구입해 은사 스님들께 교육원장 스님 명의로 감사와 당부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때에 인용한 시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란 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 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그렇듯이 조계종의 동량으로 자라날 행자들을 잘 감싸 안고 지도해 주십사하고 부탁의 말씀을 올린 것이다. 그때 그 편지와 정안밤 한 봉지를 받고는 얼마나 많은 이가 전화를 해왔는지 모른다. 그건 단순한 밤 한 봉지를 떠나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소중하고 감사하기 때문일 게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순수를 꿈꾸며’라는 시에서 “모래 한 알에서 세계를 보고/ 들꽃 한 점에서 천국을 보니/ 내 손안의 무한을 움켜쥐고/ 순간속의 영원을 놓치지 말라”라고 노래했다. 그런 마음을 간직한 사람은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주인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게다.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온 이후에 매일 조석으로 산책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런데 가끔 밤 농장으로 길을 잘못 들어갔다가 밤도둑으로 몰릴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릴 적에는 농작물을 서리해다 먹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요즘은 잘못했다가는 모두 변상해야 함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으니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얼마 전에는 산책길에 길가에 떨어져 차에 부서져버린 밤알이 안쓰러워 밤알을 주워 주머니에 담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서너 시간을 걸으며 줍다보니 어느새 주머니에 가득 찼다. 그러던 차에 어느 길가에서 다시금 밤알 두어 개를 무심코 줍는데 밤농장 주인에게 발각돼 불호령이 떨어지고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현장범에다가 주머니가 불룩하니 장물까지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할 지경이다. 다행히 마음씨가 순박하고 정이 많은 주인 할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더 험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수행자로서 실로 부끄럽기만 했다.

밤나무 주인 할아버지께서는 “알만한 사람이 어찌 염치도 없이 여름 내내 피땀 흘려 가꾼 농작물을 그렇게 도둑질 할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며 나무라신다. 그 촌철살인의 고구정녕한 한마디가 마치 정수리를 내리치는 장군죽비처럼 내 마음을 후려치면서 참으로 면목이 없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저 길가를 뒹구는 작은 밤 하나가 아니라, 그분께는 한여름 무더위에 피땀 흘려 가꾼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소중한 것을 거저 취하려 했으니 그야말로 유구무언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공양 받을 자격이 있다고 자부하며 단월들의 시주를 받아가며 무위도식한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욕되기만 하였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었으니 공양받기에 부끄럽지 않은지 잘 살펴볼 일이다. 이 가을날에 대추 한 알, 밤 한 알의 의미와 무게가 실로 크고 무겁기만 하다. 어느 가을바람에 밤송이 하나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청천벽력과도 같은 울림으로 함께 한다.

[불교신문3622호/2020년10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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