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념스님
법념스님

한가위에는 늘 ‘풍성한 가을’이니 ‘가족과 함께’ 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올해 추석 풍경은 여느 때와 다르다. ‘고향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막 대신 ‘안전하고 즐거운 추석 되십시오’ 라는 생뚱스런 현수막이 이곳저곳에서 펄럭거린다. 

가뜩이나 코로나19 때문에 움츠러들어 기를 펴지 못하는 형편이거늘. 사거리에 걸어놓은 플래카드 문구를 보니 명절 분위기가 싹 가셔지는 느낌이다. 마뜩치 않아서다. 코로나 예방 차원이라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찰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추석 명절에 차례를 모시는 날. 제사를 모시러 올 자손들이 두 명 밖에 오지 않았다. 작년까지는 적게 와도 열 명은 왔건만…. 법당이 텅 비어 스님들의 염불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아무리 매스컴에서 떠든다 하더라도 조상을 모시는 자리에는 참여하는 게 예의가 아닐까 싶다. 안전수칙을 불교사찰보다 철저하게 지키는 종교단체가 없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무엇이 못미더워 사찰로 발걸음을 못하는 걸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올 추석엔 친가나 외가로 제사 지내러 안 간 사람이 많아 명절 뒤에 으레 나오는 이혼하자는 말이 줄었다고 누가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엔 너무나도 슬픈 현실이다. 코로나 때문에 부모자식뿐만 아니라 일가친척과의 사이도 멀어지는 듯해 앞날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도 모자랄 판국이거늘.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전부 우리가 짓고 받는 것인 걸. 누구를 원망하랴. 문명의 발달이 편리함은 가져왔지만 지구를 병들게 한 원인이 되었기에. 진즉 깨우치고 주의를 기울여야 했건만, 자신만의 안위를 생각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 아닌가 싶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서로 믿고 사는 그런 풍토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물조차 마시지 못하게 되는 극한의 시점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수돗물도 안심이 되지 않아 물을 걸러서 먹는 정수기에 의존하거나 아니면 생수를 사서 먹는 현실이 아닌가. 예전에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실컷 마셨건만.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듯하다. 

언제쯤 서로 마주 앉아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을 날이 올는지 모르겠다. 추석명절이 즐거워야 하건만 이렇게 쓸쓸하긴 처음인 성싶다. 가을 하늘은 맑고 푸르건만 마음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흐리다. 

법당에 누구라도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드린다. 

[불교신문3622호/2020년10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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