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경
김두경

우연한 기회로 마을 평생교육 프로그램인 원예 수업을 듣게 되었다. 무료 수업인 데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여서 선뜻 신청했다. 수업은 원예 선생님이 준비해둔 재료를 각자 앞에 늘어놓고 알려주는 대로 화초를 심는 것이었다. 

밥공기만 한 화분에 망을 잘라 깔고, 난석 두 숟가락, 마사토 다섯 숟가락….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었다. 봄이 되면 분갈이하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릴 만큼 베란다 가득 화초를 키우는데, 밥공기에 숟가락으로 흙을 푸고 있으니. 

한 뼘쯤 되는 아이비를 심고 색돌을 얹고 군데군데 이끼로 덮었다. 완성된 화분을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심는 내내 코웃음을 쳤는데 결과물을 앞에 두고 보니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이 정체 모를 만족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단순함에서 오는 즐거움이었다. 어떤 준비나 사전 지식 없이, 결과적으로 머리 쓸 필요 없이 선생님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되었다. 간결하고 쉬운 동작을 모방하고 나니 바로바로 결과물이 뚝딱 나왔다. 무언가를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된 이후에 이렇게 단순한 일을 한 적이 있었던가. 부담도 책임도 결과에도 상관없이 오롯이 앞에 놓인 것에만 몰두하면 되는, 단순함이 주는 힐링이었다. 함께 한 친구들의 얼굴에도 해맑은 미소가 어렸다.

머리를 비우는 것은 심리적 힐링의 차원을 넘어 뇌를 활발하게 한다는 과학적 의미도 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멍하게 있는 일명 ‘멍 때리기’ 시간에 뇌의 특정 부위(DMN)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몽상을 하거나 무심히 걷거나 잠을 자는 등 뇌가 쉬는 시간에 창의력과 기억력이 향상된다고 하니 멍 때리기 대회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삽화=김두경
삽화=김두경

주위에 하나둘 보이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줄이고 최소한의 물건만 두고 사는 미니멀 라이프 또한 단순함과 간결함을 통해 미학을 찾고 빈 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 아닐까.

미니멀 라이프는 시도하지 못해 보탤 말이 없지만 멍 때리기만큼은 그 효과를 장담할 수 있다. 해결할 문제가 있다면 먼저 단순해져 보자. 문제만 끌어안고 고민하기보다는 잠시 내려두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보길. 멍하니 길을 걷거나 아무 생각 없이 벤치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길. 해결의 실마리가 쉽사리 보이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지친 뇌를 쉬게 하고 다시 문제를 대면할 힘을 충전해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불교신문3622호/2020년10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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