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스님들 포행…온 도량 가득 찬 느낌
흩음 없는 몸가짐과 품위 잃지 않는 위의


걸음걸이가 양팔 크게 휘둘러 땅 휩쓸 듯 해
무명승복이라 늘 조신해야…은사 스님 경책

선행스님
선행스님

좌선하는 중간에 잠시 걷는 것을 포행이라 한다. 경행(經行) 또는 행선(行禪)이라 하는데, 걷더라도 늘 참선하는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 가벼운 산책과 소요하듯 걷는 것도 포행이라 한다. 포행은 곧 조행(操行)이겠다. 흩음이 없는 몸가짐과 품위를 잃지 않고 위의를 갖추어 걸어야 한다는 의미다.

선원에서는 공양 시간 전후로 가벼운 산행을 겸한 포행과 좌선 중간에 하는 포행으로 나눌 수 있겠다. 30년 전 동안거를 해인사 선원에서 첫 철을 지낼 때였다. 4시간 수면에 12시간 이상의 정진 시간이었기에 중간에 포행시간이 많았다. 처음이었기에 대중을 따라서 큰 방에서 줄곧 한철동안 포행하고는 발바닥에 굳은살이 생겼다. 후에 알았지만 굳이 큰 방이 아니라도 밖에서 해도 무방한 일이었다.

그 후로 선원에서 정진할 때면 양해를 구하고 밖에서 포행했다. 때로는 소임자에 따라 큰 방에서 에누리 없이 해야 할 때도 있다. 2000년 동안거 송광사 선원에서 결제하는 첫날 소임자의 일성이, “좌선 중간에 하는 포행은 반드시 큰 방에서 하겠습니다”였다. 앞서 10년 전에 따끔한 경험을 했기에 곧장 밖에서 포행하겠다는 소견을 밝혔다. 당시 승랍이 상판, 중판, 하판으로 볼 때 중판 쯤 되었으니 어쩌면 당돌한 의견일 수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혼자였다. 매서운 추위였다. 대부분 그러한 사실을 감지한 납자들이었기에 왜 혼자였는지 그때서야 알았다. 그렇다 해도 발바닥에 굳은살이 붙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10년이 조금 지나 2012년도에 또다시 송광사 선원에서 결제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 추위에 혼자 밖에서 포행한 일이 회자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포행은 무엇보다도 위의를 갖춰 여법해야 한다. 일찍이 은사 스님으로부터 경책을 들었다. 걸음걸이가 양팔을 크게 휘둘러 마치 땅을 휩쓸 듯 한 모습이라는 지적이셨다. 해서 마음 속으로는 늘 조신(操身)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고 있다. 더구나 평소 풀 먹인 무명 승복이라서 조금만 지나쳐도 행동거지가 크게 보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백양사 강원에서 강주 소임을 보던 때의 일이다. 인근에 있는 부부가 늘 아침 일찍 대웅전에서 기도를 했다. 그 시간이면 아침 공양 후 강사진 스님들과 포행을 했는데, 그 분들 이야기로 유독 반듯하게 풀을 먹인 승복의 모습이 너무나 신선했단다. 그렇게 1년 넘게 지켜보던 어느 날 초대를 받았다. 꽤 규모 있는 우사(牛舍)를 세우는데 기도를 해 주십사하는 부탁이었다. 강사 스님을 대동해서 상당히 넓은 터를 돌면서 의식을 했다. 부부의 덕담이 아직도 생생하다. “늘 반듯하게 풀을 먹여서 다려 입은 모습이 마음을 청량하게 합니다!”

승복에 풀을 먹이고는 다려 입게 된 것은, 처음 선원에서 정진할 때부터였으니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처음 풀해서 손질할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실소(失笑)가 절로 나온다. 가당찮게 서툰 손질에 지켜보던 납자들이 지나치며 하나하나 일러 주었다. 그렇게 몇 차례에 걸쳐 배운 솜씨로 아직도 꽤 맵시있게 다림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사중에는 대중 스님들이 많아 공양 후 포행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특히 아침 공양은 전 대중이 동참하기에, 공양 후 포행하는 모습이 온 도량에 가득찬 느낌이다. 때때로 대중 스님들과 산문까지 2km 남짓 포행을 한다. 어느 때는 풀해서 다려 입은 스님을 궁금해 하더란다. 정갈한 승복이 때로는 위안을 줄 수 있기에 다시 한 번 옷매무시를 살피게 된다. 

[불교신문3621호/2020년10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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