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동은스님

내 침실 옆에는 부도(浮屠)가 있다. 불과 십 여 미터 정도이니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 창을 열면 이곳에서 수행하다 입적하신 스님들의 무덤이 바로 앞에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자유롭게 흩어져 고졸 (古拙)한 모습으로 있는 부도전을 보노라면 한없이 편안함을 느낀다.

가끔 포행길에 배례를 하고 가만히 부도를 만지면 “천은사 주지! 자네 지금 제대로 소임보고 있는가?” 하시는 큰스님들의 경책이 까칠한 감촉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그러니까 나의 침실은 살아있는 선방이며 현장학습장이다. 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라는 가르침을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법칙들이 있다. 그리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만고불변의 법칙이 딱하나 있으니 바로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오직 하나 끝없이 반복되는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출가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만약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이 사실만 때때로 자각해도 우리네 삶이 그리 팍팍하진 않을 것이다. 사람과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가족이나 지인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는 마치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잘 살아야지 하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고 산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내 차례가 오면 “아차!”하며 후회하는 것이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매일 아침 “오늘 제가 살아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제가 이 귀한 인생을 얻었으니 오늘도 화를 내지 않고 어려운 일도 인내하겠습니다. 오늘도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하면서 저의 모든 것을 이 세상에 베풀겠습니다. 이 귀한 오늘을 그렇게 살겠습니다”하며 기도를 하신다고 한다.

영어 ‘Present’에는 ‘현재’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뜻이 같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이 바로 선물인데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부도, 아니 무덤 옆 침실에서 매일 아침 다시 일어나는 기적을 선물 받고 있다. 

[불교신문3621호/2020년10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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