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법난 겪고 인권 중요성 재확인 구체적 실천 나서다”

1990년 11월 불교인권委 발족
“부처님 가르침인 자비 실천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회”
위안부 피해자 노동문제 등 확대

“민주발전과 경제의 공정분배가 실현돼야 하고, 인권이 더욱 신장돼야 하며, 계층간 노사간 지역간 갈등이 대화와 교류를 통해 해소돼야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1989년 5월11일자 매일경제신문에 실린 월주스님(당시 금산사 주지)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에 보도된 이 기사에서 월주스님은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80년 종교의 자유와 자율성을 크게 침해한 전대미문의 10·27법난을 겪은 불교계가 인권을 비롯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대적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인터뷰이다. 무장병력을 동원한 공권력의 부당하고 무리한 사용으로 불교 명예는 훼손되었고, 스님과 재가불자들은 인권이 유린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10·27법난 이후 불교계는 사회문제에 깊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특히 인권(人權)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구체적인 실천에 나섰다. 

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운영한 5공화국과 6공화국 시절 인권을 거론하는 것은 은연중에 금기시 되었다. 그러나 월주스님이 “마음을 깨달아 지혜를 얻고 일체 중생과 한 몸이 되어 더불어 살고 있는 이웃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자비심을 가지고 생활을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은 의미있는 발언이다. 중생을 위하는 마음과 자비행이 곧 인권이며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란 입장 표명은 현대사회에서 불교와 불자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계가 사회적으로 인권 활동의 첫발을 내딛은 것은 1990년 11월이다. 그동안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스님과 재가불자를 중심으로 개인적 또는 소규모 조직을 통해 이뤄진 불교계의 인권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 11월20일 동국대 정각원에서 창립법회를 봉행한 ‘불교인권위원회’는 조계종 원로 석주스님을 고문으로, 총무원장을 지낸 월주스님과 한상범 동국대 교수(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 용태영 변호사를 공동위원장으로 선임하면서 공개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불교인권위원회는 정관스님, 지원스님, 진관스님, 연기영 동국대 교수, 김동현 변호사, 박준호 씨 등 불교계, 교육계, 법조계, 재야활동가들이 다수 동참하면서 인권운동의 깃발을 들었다. 

창립법회에서 발표한 ‘창립취지문’은 불교의 가르침이 인권운동과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건전한 민주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역할이라는 입장을 담았다. 

불교인권위원회의 출범은 교계 안팎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동아일보와 한겨레 등 일간지를 중심으로 관련 기사를 주요하게 보도할 정도로 불교인권운동에 거는 기대가 컸다.

동아일보는 1990년 11월21일자 ‘불교인권위 발족과 전망’이란 제목의 기획기사에서 불교인권위가 활동의 근본을 대자대비(大慈大悲) 사상에 두고 있다며 ‘생명존중과 자비의 실천’ ‘모든 중생을 부처로 섬긴다’는 자세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나갈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청년불교도들과 젊은 승려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예상돼 조만간 순조롭게 정상궤도에 들어설 것으로 동아일보는 전망했다. 

월주스님은 1990년 11월25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불교인권위)운동의 방향은 인간존중의 차원에서 부당한 인권탄압사례 예방과 그에 대한 법률구조사업, 그리고 반(反)민주적이고 비(非)인권적인 법률의 개정작업 등에 우선 역점이 두어질 것”이라면서 “나아가 공존(共存) 공생(共生)의 세계사적 흐름을 좇아 반핵(反核) 반공해(反公害)운동도 벌여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불교인권운동은 인권위회는 물론 조계종도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노동자, 농민, 빈민 등의 삶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해, 불교가 출세간의 가르침이라는 선입견을 타파하고 세간과 함께하는 ‘살아 숨쉬는 종교’라는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었다. 

[불교신문3621호/2020년10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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