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공부…부처님께서 준 또 다른 선물”

통증 심해질수록 고행 떠나셨던
부처님 모습 더욱 선명하게 떠올라
여정 이어질수록 감정에 휩싸였던
스스로의 모습 점차 옅어지고
길 위의 모두가 온전한 하나로
​​​​​​​나아가…간절함으로 최선 다할 것

국난극복 불교중흥을 발원하며 봉은사를 향해 가고 있는 상월선원 만행결사 자비순례단의 여정이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대의 젊은 청년 불자는 이번 자비순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결사대중으로 참여하고 있는 대학생 백준엽 씨가 본지에 순례기를 보내와 전문을 싣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의지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함께 걷는 순례단의 숨소리와 옅은 불빛뿐이었다. 묵언으로 이어지는 순례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자국 소리마저 고요하게 새벽녘의 세상과 하나가 된 듯 했다.

심한 일교차와 불편한 환경 속에 처음엔 평정심이 흔들리기도 했다는 백준엽 씨는 “낙단보를 지날 무렵 순례단을 따라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부처님께서 화현해 주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진은 1인1텐트 생활 중인 백 씨 모습.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지난 두 달 여간 매일같이 그려오던, 꿈속의 풍경 같은 이 순간. 나는 지금 ‘상월선원 만행결사 자비순례’ 길 위에 서있다.

지난겨울 상월선원 천막결사 아홉스님들께서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의지를 가지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셨고, 이는 내게 극심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지난 1학기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됐다.

스님들과 함께 걸으며 많은 분들께 희망을 전해드리는 일은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학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자비순례 동참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함께하게 됐다. 순례와 학업을 무사히 병행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길 위에서 공부하는 것 역시 부처님께서 주신 또 다른 수행 정진의 기회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임하고자 마음먹었다.

10월6일 순례가 시작되기 하루 전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대구 동화사에 도착했다. 처음 들어가 본 텐트 안에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부디 무사히 완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본격적인 여정의 첫 발을 딛었을 때는 애써 잊고 있던 두려움이 찾아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500km를 오직 두 다리만으로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출발 직전 급하게 바꾼 신발에 적응이 되지 않아 발은 계속해서 시큰거렸고 숙영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발목마저 저려오기 시작했다.

텐트에서 머무는 것 역시 안락하고 편안한 삶에만 익숙해져 있던 내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낮에는 찌는 듯이 더웠고 밤에는 온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심한 일교차와 불편한 환경 속에서 처음에는 평정심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이 부처님께서 행하셨던 전법과정을 조금이나마 겪어보는 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동체대비의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품어주시며 길 위의 삶을 살아가셨던 부처님. 바로 곁에 계시는 스님들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묵묵히 정진하시는 참된 수행자의 모습으로서 부처님의 가피가 우리 자비순례단과 늘 함께하신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셨다.

순례 6일차 아침, 회주 자승스님의 큰 원력으로 지켜낸 낙단보 마애불 부처님께 참배를 올린 뒤 다시 순례를 이어나갔다. 낙단보를 지날 무렵 순례단을 따라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부처님께서 화현해 주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결의 흐름 속에서 물방울 하나만을 구별지어 생각할 수 없듯이, 이 순간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장엄한 순례의 물결 속에서 나라는 존재만을 분별하여 생각했기에 비롯되는 것임을 알 게 되었다.

여정이 이어질수록 온갖 감정에 휩싸였던 나 자신은 점차 옅어지고 길 위의 모두가 온전한 하나로서 나아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온 세상의 화합과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많은 분들이 용기와 희망을 되찾으시기를, 부처님 가르침이 이 땅 위에 널리 퍼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모든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길을 걸으며 통증이 심해질수록 2500여 년 전 고행의 길을 떠나셨던 부처님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순례기간 중 고되고 힘들었던 많은 날들은 부처님의 삶을 가슴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공의 제약을 뛰어넘어 부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부처님과 하나가 되게 하는 진리의 매개체는 다름 아닌 길 위에서 마주친 불편함 이었다.

이번 순례는 세상을 향해 열려있기에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결사였다. 누적된 피로감이 조금은 벅차게 느껴질 무렵 순례단에 전해진 공양은 부처님께서 내려주시는 감로수와도 같았다.

동참하지 못한 분들도 상월선원 유튜브와 언론 보도를 통해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시며 마음으로 함께해 주셨다. 순례는 서울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임과 동시에, 함께하는 모두의 마음속에 새로이 만들어지는 부처님의 길로 걸어 나가는 과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자비순례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줄탁동시였다. 살아오면서 이전과는 다른 나 자신을 찾고 싶었던 무수한 시간들이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상념에 매달린 채,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진정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한참동안 갈구해왔다.

하지만 관성과 타성에 젖어 버린 일상 속에서 나의 힘만으로 스스로의 세계를 부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삼칠일이 지나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줄과 탁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자비순례 기간동안 스님들께서는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은산철벽을 너머에서 끊임없이 두드려 주셨다.

순례는 오직 모두를 위한 마음으로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인드라망 안에서 우리가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내적 전환의 시간이었다. 아상에 집착하던 기존의 삶에서 탈피하여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모두가 하나되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줄탁동시의 여정이었다.

문경새재 이화령을 넘으며 자비순례는 반살림을 맞았다. 앞으로 나아가게 될 열흘 남짓의 여정도 처음 발심했던 때의 마음 그대로, 매 순간 매 걸음 불교중흥과 국난극복을 위한 간절함으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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