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사람을 위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안전장치를 넘어서는 문화로
마스크를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사람들은 마스크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모양인데
정작 배워야할 것은
마스크와 불편한 동거를 만든
원인을 찾아 없애는 길이다

정운스님
정운스님

서울을 갈 때면, 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표 두 장을 사서 서울까지 눈을 감는다. 보령에서 서울은 짧지만 모처럼 쉬는 시간이다. 

며칠 전 서울 터미널에서 있었던 일이다. 막 터미널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문자가 계속 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부처님오신날 찬불가 반주 봉사를 하는 혜진이가 보냈다. ‘스님 지금 혹시 터미널이세요? 스님하고 비슷한 분 봤는데 마스크 써서 잘 모르겠더라고요, 스님 하고 불러놓고 우리 스님이 아니면 민망한 상황 될까봐 부르지 못했어요’라는 내용이다. 혹 볼 수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혜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아이 보기 힘든 시골에서 남들 앞에서 연주할 정도의 솜씨를 갖춘 불자니 눈물나도록 고맙고 자랑스러운 아이였다. 결혼하고 보령을 떠났다. 그리고 두 아이 엄마가 됐다. 오지 않아도 될 터인데도 부처님오신날이면 어김없이 내려와 아름다운 음률을 선사한다.

혜진이에게도 부처님오신날에 가야할 사찰이 있고 가족과 보내야 하는 귀한 시간인데 이곳까지 오기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그럼에도 관두지 못하는 이유가 후임이 없기 때문임을 나 역시 잘 안다. 그래서 이제 그만와도 된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회사가 터미널 부근이라 출근하는 길에 먼 발취에서 나를 본 모양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봤으니 왜 나인지 몰랐겠는가? 보고 대번에 ‘스님’하고 소리쳐 불렀을 것이다. 걷는 모습, 체형, 전체 이미지가 영락없이 세원사 스님인데도 혹시 하며 망설이는 이유는 얼굴을 가린 마스크 때문이다. 게다가 안경에다 모자까지 썼으니 아침에 헤어진 가족을 거리에서 만나도 긴가민가 망설일만한 변장이었다. 

수술실 의료진이나 일상적으로 쓴다고 생각했던 마스크가 이토록 밀접하게 나의 일부분이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2020년 봄 이전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장면은 이제 낯설 정도다. 가까이 있으니 당연히 몰랐던 지식 정보도 알게 됐다. 차단 정도에 따라서 이름도 다르고 용도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병균이나 먼지 등 호흡기 내 흡입을 막기 위하여 차단 성능이 있는 것을 보건용 마스크라 하고 보건용 마스크에 붙이는 ‘KF’가 ‘코리아 필터(korea filter)’의 줄인 말로 식약청 인증을 거친 제품을 말한다는 전문 지식도 배웠다.

‘KF’ 뒤의 숫자는 차단 성능을 나타내고, 비말 차단용 마스크(KF-AD)는 숨쉬기 불편한 보건용 마스크를 대신하기 위해 의료진들이 사용하는 덴탈 마스크를 일반용으로 만든 용도며, ‘KF-AD’는 ‘Anti Droplet’의 줄임말로 미세물방울 차단이라는 고급 정보도 이제 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한국제품인지 어느 정도 차단하는지 등 실용 정보에 관심 두더니 마스크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사고 나아가 옷 색깔에 따라 마스크 색상을 맞추는 패션에까지 관심 갖게 됐다. 마스크와 함께 하는 일상이 길어지면서 나름대로 함께 사는 법을 익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스크에 적응이 안 된다. 어느 시인은 “자주 보아야 예쁘다”고 했는데 마스크는 예외인 것 같다. 나와 다른 사람을 위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안전장치를 넘어서는 문화로 마스크를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사람들은 마스크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모양인데 정작 배워야할 것은 마스크와 불편한 동거를 만든 원인을 찾아 없애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무절제한 욕심 탐욕이 인간의 입에 마스크를 씌운 것은 아닐까?’라고 묻는 지인이 보내 준 짧은 글이 마음에 와닿는 이유다. “부처님이 화나셨나요?/ 얼마나 거짓말과 막말을 하여 마스크로 입을 막고 살라 하십니까/ 얼마나 죄를 지었기에 떨어져 살라(거리두기) 하십니까/ 얼마나 도둑질과 못된 짓을 했기에 물만 보면 손 씻으라 하십니까.”

[불교신문3620호/2020년10월14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