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현
김숙현

세상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 사람을 꼽으라면 지난 9월 작고한 미국 진보의 아이콘이자 여성 운동계의 대모로 추앙받는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꼽겠다. 여기에서 ‘잘했다’의 의미는 ‘많이 이겼다’라는 뜻이다. 그것도 씨름판이나 난장판이 아닌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법정에서다. 그녀가 싸움 잘하는 법을 익힌 것은 소녀 시절 어머니로부터라고 한다. “이기고 싶다면 절대 고함치지 말라. 분노는 금물이다.” 

실제로 그녀는 내성적이며 목소리도 작았다. 그러한 그녀가 별세하자 ‘세상을 바꾼 여인이 떠났다’며 미국 국민들이 록 스타를 추모하듯 거리로 나섰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는 그녀가 작고하기 1년 전에 개봉된 다큐 영화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솔직히 긴즈버그에 대해 그저 150년간 남학생만 받았던 군사학교에 여학생을 허용하라는 판결을 내리는 등 여성·유색인종의 차별 철폐에 앞장 선 법관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긴즈버그는 1960년대부터 인종과 성별에 따른 차별을 없애기 위한 거대한 전선을 이끌었던 법조인이다. 1970년대에 유명한 여성주의 운동의 지도자이자 대변자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활개를 칠 수 있었던 것은 긴즈버그의 역사적 메시지를 던지는 명 판결문이 뒤를 받혀주었기 때문이었다. 긴즈버그는 1996년 버지니아군사학교(VMI) 판결 이전에도 여군이라 주택 수당을 못받는 사건, 남녀 임금 차별 소송 등에서 늘 소수자의 편에 섰다.

긴즈버그가 ‘싸움을 제일 잘 하는 사람’으로 설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보다 법을 사랑해 법 공부를 신명나게 했다는 점이다. 그는 법정에서든 그 밖의 시정에서든 소리치거나 윽박지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법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되 가장 낮은 사람에게까지 공정하게 혜택이 가도록 도왔다. 이 때문에 증손자뻘인 20대도 그를 록 스타처럼 칭송하게 된 것이다.

법공부에 매진, 법무로 출세하고 법 행정의 최고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법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개악도 서슴지 않는 현실을 돌아볼 때 참으로 소중한 긴즈버그의 법정신이 아닐 수 없다.

[불교신문3620호/2020년10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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