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화 마하무용단장이 그리는
‘나의 삶, 나의 불교’ ⑥ 봉사의 즐거움


가수 주권기씨 통해 봉사 인연 맺어
올여름 구례 수해현장 찾아 봉사활동
광주 생명나눔과 함께 도시락 나눔

김치담그기 연탄배달 팥죽 茶공양 등
부르는 곳 어디든 달려가 행복 나눔
“좋은 인연 맺게 해준 부처님께 감사”

2020년 1월 설렘과 긴장 새로운 각오 속에 힘차게 출발했는데 코로나19라는 생소한 이름의 바이러스에 붙잡혀 모든 것이 엉망이 됐다. 처음 발병했을 때만 해도 다들 금방 사그라지고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약국 앞에서 길게 줄서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마스크를 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바이러스가 더위에 약해서 여름이면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에 기대를 했는데 그 반대로 한 여름에 서울과 수도권에 펜데믹이 일어나 온 나라를 휘젓는 것도 모자라 내년 말 쯤 돼야 끝난다고 하니 맥이 풀리는 느낌이다. 

올 여름은 코로나와 전쟁도 벅찬데 자연재해까지 겹쳐 그야말로 적진에 갇힌 형국이었다. 그만큼 고통도 크고 광범위하다. 내가 몸담은 문화공연계도 피해가지 못했다. 아니 여행업계 다음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염 예방 최대 무기가 거리두기이다 보니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공연과 행사가 취소됐다.

공연이 몰리는 가을이 왔는데도 공연계는 한산하다. 단원들과 눈코뜰새 없이 다녔던 작년의 그 분주함과 고단함이 그리울 정도다. 공연이 없는 대신 재해가 많이 일어나고 어려운 이웃도 생기다 보니 봉사활동은 많아졌다. 봉사갈 일 많아서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슬프기는 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며 집을 나선다. 
 

‘기다리는 마음’  국화의 계절 가을, 보는 것으로 행복하고 향기로 즐거운 국화처럼 봉사는 나를 들뜨게 한다. 73cm×53cm.
‘기다리는 마음’ 국화의 계절 가을, 보는 것으로 행복하고 향기로 즐거운 국화처럼 봉사는 나를 들뜨게 한다. 73cm×53cm.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구례다. 8월 초 전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구례지역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구례군청에 따르면 전체가구 중 10%가 침수되고 가축 3650마리가 희생됐으며 1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뉴스를 접한 생명나눔실천본부 광주전남 본부장 현지스님과 김은희 후원회장님, 김형진 사무국장님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광주지역 후원자 봉사자들이 함께 했다. 가장 인기를 끈 것은 밥차였다. 도시락이나 빵으로 때워야했던 이재민과 봉사자들은 금방 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돼지볶음, 집에서 준비한 오이소박이 김치 등이 곁들여진 도시락을 받아들고 감격했다. 밥차는 무용가 공옥진 여사의 뜻을 이어받아 따님인 김은희 후원회장이 봉사현장에 파견하는 ‘생명의 차’다. 

나도 그 현장에 함께 했다. 34도가 넘는 폭염 아래서 조리하는 밥차는 사우나 저리 가라할 정도로 푹푹 쪘다. 즉석에서 돼지고기 볶음을 만드는데 비 오듯 흐르는 땀이 멈출 줄을 몰랐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어 소수가 500인분을, 그것도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야 했다. 마스크를 쓰고 폭염 속에서 불을 지펴 500인분을 만드는 시간이 영겁처럼 길고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힘들다 소리 하지 않고 즐겁고 신나게 일했다. 김이 나는 따뜻한 밥과 반찬을 맛있게 먹을 봉사자와 이재민들 생각이 가장 큰 힘이며 즐거움이었다. 

11시30분 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배식했다. 뜨거운 김이 나는 도시락을 받아가는 주민과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 군청 수해복구 관계자들의 웃는 얼굴이 마스크 너머로 또렷하게 보였다. “애쓰십니다”, “감사합니다”, “힘 내십시오”…. 주고받는 인사도 즐거웠다. 더위도 땀도 모두 달아나고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 시원하고 상큼한 기분이 감돌았다. 

준비한 우리 식사까지 모두 제공하고 늦게 온 분들은 돌려 보내야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끈 밥차와 봉사자들은 광주로 돌아가고 나는 버스를 타고 귀경했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봉사를 하는 이유다. 남을 돕는다고 나섰는데 돌아보면 내가 훨씬 크고 많은 혜택을 받는 것 같다. 그래서 늘 나를 생명나눔과 인연 맺게 해준 주권기씨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2012년 생명나눔실천본부 광주전남 홍보대사인 가수 주권기씨를 통해 생명나눔과 인연 맺었다. 처음에는 월 1만원 정기 후원을 했는데 그 해 5월 김치 담는데 힘을 보태면서 현장봉사를 시작했다. 집에서만 담그다 산처럼 쌓인 열무 배추 양념 앞에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몇 사람 몫을 거뜬히 하는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봉사자들과 함께 하니 재미있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세 사람 몫을 거뜬히 해내는 마하무용단원 명선언니 같은 분이다. 집에만 있었으면 어떻게 그런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맛있게 만든 김치가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보고 씻은 듯 나았다. 

이를 시작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처음에는 광주 전역을 다니다 영광, 화순, 나주 등 인근 도시로 확장했다. 겨울 김장 김치담그기부터 연탄배달, 동지팥죽, 떡국 등 품목과 주제가 다양해졌다. 그때마다 공옥진 밥차가 함께 했다. 늘 대환영 받고 한 번도 맛과 품질에서 실패한 적이 없는 공옥진 밥차는 우리들의 수호신이자 든든한 후원군이었다. 

봉사활동 중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업은 생명나눔홍보다. 사실 모든 봉사가 생명나눔과 연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명나눔 이름으로 밥차가 가고 김치를 담그고 연탄을 나르니 자연스럽게 홍보가 된다. 생명나눔활동은 해마다 가을 무등산에서 주권기씨의 기타와 함께 했던, ‘무등산 옛길 걷기대회’를 통해 이뤄졌다. 환자 치료비 모금 활동으로 열리는 걷기 행사를 통해 걷힌 기금을 치료비로 전달하고 1년간 수고한 후원자와 봉사자들이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2013년 4월 조선대학교 병원로비에서 열었던 ‘사랑의 전통 차 나눔팀’도 잊을 수 없다. 나눔 행사를 하다 만난 10명이 매달 병원 로비에서 장기기증 희망서약, 소아암 백혈병 치료비 모금 후원 홍보를 했다. 후원회장님이 꺾어온 들꽃에다 홍련 백련으로 장식하고 직접 우려낸 차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니 긴장이 감도는 병원 로비가 환해졌다.

환자도 보호자도 의료진도 꽃과 차의 향내음에 굳은 얼굴을 펴고 잠시나마 미소짓는 것만으로도 큰 기여를 한 것 같아 뿌듯하고 행복했다. 떡과 차를 마시며 장기기증에 대해 대화가 오가고 자연스럽게 기증 서약을 했다. 서울로 이사온 뒤 자주 가지 못해 늘 미안한데, 8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가는 ‘사랑의 전통 차 나눔팀’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를 보낸다. 

지금도 어디선가 봉사자 후원자들의 희생과 사랑의 실천으로 기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와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 수해현장에서 구슬땀 흘리는 봉사자, 매월 얼마씩 보내는 정기후원자, 장기기증 서약자, 조혈모세포 기증자, 기타를 메고 즐겁고 흥겨운 노래를 들려주는 음악가와 무용가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위해 헌신한다. 우리 사회는 그들로 인해 윤기가 나고 행복한 기운으로 치유받는다. 

나 또한 작지만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행복하다. 좋은 인연을 맺어준 부처님께 감사기도 올린다. 코로나가 하루빨리 끝나고 모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글·그림=정현숙

[불교신문3620호/2020년10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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