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뜨겁게 박힌 ‘동그라미’

신비하다 하지 않던가? 깊다하지 않던가? 공하다 할까? 있다고 할까? 없다고 할까?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이 하나를 얻어 두루 살폈으니 말로는 도달할 수 없고 마음으로 갈수도 없다”라고 오가해 설의에서 함허당(涵虛堂) 득통선사께서는 설하고 계신다. 

여기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본래 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 지울 길 없고 모양 그릴 수 없는 이것, 한 물건이 무엇인가? 옛 어른은 “옛 부처님 나기 전에 의젓한 동그라미, 석가도 모른다 했거니 어찌 가섭에게 전하랴”라고 말씀하셨다.

육조 혜능선사께서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는가? 늘 면전(面前)으로 하루에도 몇 만 번씩 출입하고 상주하는데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이것, 참으로 귀하고 영특하도다. 

시작도 연유를 따질 수 없이 불가능한 일이니, 나도 지녔고 너도 지닌 이것 참자리를 찾아 고쳐 앉아 보시게나.

선사들의 선서화(禪書畵)에는 어김없이 작품이 되고, 퇴옹당(退翁堂) 큰스님께서도 한 붓질하였으니 작품 귀하게 남기셨다. 한 번의 호흡 간에 쉽게 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욕심내면 낼수록 첫 마음과 멀어지는 이 묘한 신령의 기운 덩어리, 꽉 다물면 맛이 없고 좀 벌어지면 기운이 다 빠져 나가 버리는 이놈, 이 뭣고.

옻칠 판에 순금으로 한 호흡 모아 휘호한 10여 년 전의 작품, 볼 때마다 나는 다시 할 수 없다. 나는 다시 할 수 없다고 그저 고개 숙여지는 작품, 오래 전 만난 나의 한 물건이 되었다. 허공같이 뚜렷하여 모자랄 것도 없고 남을 것도 없다. 그때 그 마음 어디 갔을까? 

망상도 집착도 떠나가 버린 일원상 둥근 마음 가졌기에 둥글어 보일뿐인 것을, 찬바람 부는 계절의 가르침을 받아 적는, 국화가 막 피어나기 아름다운 가을 저녁, 마음에 벌써 일원상(一圓相) 하나 골기(骨氣) 있게 들어앉았다. 

가슴이 뜨겁다 화들짝 놀랍다.

[불교신문3620호/2020년10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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