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김영

모처럼 날이 맑아 인근 산에 올랐다. 전날 내린 비의 흔적은 산길에도 그대로 남아 낙엽들은 물기를 조금씩 머금은 상태였다. 상쾌한 기분으로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비탈길에서 그만 몸이 휘청했다. 순간 왼발이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다리 찢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발목 부근이 뭉근하게 아팠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두 다리는 괜찮은 듯 아닌 듯 참을 만도 해서 옷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확연히 느려진 걸음걸이로 조심스레 산길을 내려왔다. 산 초입에 다다랐을 때 올라갈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안내판을 발견했다.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쓰인 임시 표지판은 나란히 두 개나 서 있었다. 지질조사를 위해 일정 기간 통행을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거리 곳곳에 코로나19 관련 안내문이 걸려있어 그런 종류겠거니 지레짐작하며 예사로 지나쳐버린 것이 불찰이었다. 그러잖아도 두 갈래였던 오솔길이 사라지고 나무와 풀들이 베어져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미련하게도 집 앞에까지 와서야 양말을 벗고 발을 살펴보았다. 발목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더는 걸을 수 없었고, 걸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근처 한의원에 들렀더니 침 치료를 마친 젊은 한의사는 발이 신발 안에서 힘을 못 써서 넘어진 거라며 등산할 때는 꼭 스포츠 양말을 신고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하필이면 발목을 죄는 패션 양말을 신었고 편한 운동화를 신은 날이었다. 

다친 발목으로 무리하게 걸어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발목이 더 부어올랐다. 사진을 찍어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정형외과에 가 보았다. 엑스레이 결과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인대 손상으로 깁스를 2주쯤 하고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정형외과 의사의 처방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인연 과보라 했던가. 여러 요인을 무시하고 무모하게 산에 오른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었다. 큰 재해가 있기 전,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나 징후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은 개인의 일상에도 적용되는가 싶었다. 매사에 기본을 지키는 일과 원칙준수는 양보할 수 없는 진리임을 다시 한 번 체득한 하루였다.

[불교신문3620호/2020년10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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