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행정진 후 지쳐 늘어진 건
그동안 최선 다해서라고 위안

혜인스님
혜인스님

지친다. 이런 얘긴 자신에게 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또 참으며 버텨왔는데, 이젠 도저히 인정 안 하고는 못 배기겠다. 사실 꽤 됐다. 더이상 의욕도 안 나고 무얼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그냥 버티는 상태. 근데 버티기만 하기도 힘들어서 못 해 먹겠는 상태. 지친 건 확실한데 지치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런 상태. 이렇게 횡설수설 지껄이는 걸 보니 지친 게 확실하다.

사실 최근 들어 열심히라곤 못 하겠지만 그래도 해오던 대로 꾸준히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더 최근엔 그 ‘유지’에 자꾸 구멍이 났다. 진짜 힘 빠지는 건 구멍 날 만큼 힘들었으니 그만큼 쉬어주면 다시 충전이 돼야 하는데 충전이 안 된다는 거다. 오래 써서 충전도 안 되는, 충전해도 금방 달아버리고 마는 폐건전지가 돼버리면 이런 느낌일까.

지난 주말엔 오랜만에 신도 몇 분과 천수다라니 108독을 함께 했다. 기도 초창기엔 108독을 마치고 신도들이 “스님, 고생하셨어요” 하면 ‘즐겁게 기도했는데 고생은 무슨?’ 하고 말았는데, 이번엔 “고생하셨습니다, 스님” 하는 소리에 덜컥 겁이 났다. ‘한 달 후에 이걸 또 해야 된다니. 저 눈빛을 보면서 어떻게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지….’ 바로 다음 날 법회와 재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정말 방전이 돼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태산같이 높은 숙업(宿業)이라지만 정말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구나. 이젠 하다하다 안 되니까 지쳐서 아예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말 아무것도 못 했다. 이 마음을 참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다. 그냥 너무 미안하고…. 그동안 잘못 살아서 이토록 업만 지어온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고.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슬프다. 요즘엔 이런 걸 ‘웃프다’고 한다나. 스님이 돼서 천일기도 한답시고 설치는 놈이 넋두리나 늘어놓고 있으니, 이런 나를 보는 내 자신이 참 웃프다.

이놈의 업이 참 무서운 게 이 짐을 누구에게 지워줄 수가 없다는 거다. 누구한테 힘들다고 하소연한들, 맛있는 걸 배터지게 먹은들, 하루 종일 늦잠을 잔들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란 거다. 결국 부처님 법 모르고 산 죗값을 치르는 셈이니, 부처님 법속에서 열심히 수행하는 수밖에 없는데, 지쳤다는 핑계로 수행도 제대로 못 하겠다고 하니,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니. 어이구 이 몹쓸 놈. 천하의 나쁜 놈! 이 무서운 놈.

밖에선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씨가 곧 출소한다고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데, 나는 천하의 악질범들보다 내가 더 무섭다. 이 업이란 놈은, 내가 살아온 과거란 놈은 경찰에 신고할 수도, 때려잡을 수도, 잘못했다고 싹싹 빌 수도 없는 놈이다. 당최 방법이 없는 놈이다. 그래서 진짜 무서운 놈이다. 세상에 나쁜 놈들 다 나와 보라고 해라. 그중에 진짜 나쁜 놈은 나다.

웃프다. 900일 가깝도록 최선을 다해오고 있다고 말 못 하는 게 부끄러워서. 어쩔 수 없이 버티기만 하면서도 항상 마음 한켠이 무거웠는데. 어쩌다 가행정진을 좀 했다고 지쳐 늘어진다는 건, 그동안 그만큼 최선을 다했기에 지칠 수도 있던 거라고 위안 삼을 수밖에 없는, 내 현실이 너무나 웃프다.

삶을 알아간다는 건, 이렇게 슬프고도 우스운 일이었단 말인가. 세상에 나보다 힘들고 지친 누군가는 또 얼마나 많을 거란 말인가. 그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또 얼마나 적을 거란 말인가. 세상에 나쁘고 무서운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분들에게 어떤 위안도 줄 수 없는 내 삶이 얼마나 우스운가.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불교신문3619호/2020년10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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