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벗어나 ‘무위 경지’에 드는 것
입적소식 들을 때마다 회향의 마음…


구름 한조각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생사
모든 속박과 번뇌에서 벗어난 평온한 상태

선행스님
선행스님

스님의 운명(殞命)을 입적(入寂) 또는 원적(圓寂)이라 한다. 생사를 벗어나 고요하고 무위(無爲)의 경지에 든다는 것이다. 본래는 번뇌를 소멸시킨 부처님과 아라한의 죽음이다. 모든 속박 곧 번뇌에서 벗어난 평온한 상태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엊그제 안타깝게도 이른 나이에 입적한 스님의 다비식에 참관했다. 영결식의 슬픔은 안과 밖이 따로 없겠다. 스님은 열 살 이전에 통도사에 입산하여 제방에서 정진을 하다가 중간에 한동안 외국 유학을 했고, 경륜이 쌓여서는 서울의 대규모 사찰의 소임과 종단의 중책을 보는 스님이었기에 슬픔이 더했다. 특히 어려서부터 함께 지내며 상좌의 연으로 남다른 애정이 깊었던 어른 스님의 상실감과 허탈해 하시는 모습에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다비식은 추석 다음날이었다. 그날은 나에게 은사 스님을 소개하고, 수계한 이후로는 경전 공부하는데 필요한 경전과 책자는 물론 정진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든든히 해 주시던 노비구니 스님의 입적일이다. 2008년도였으니 어느덧 10년이 조금 지났다. 당시 백양사 강원의 강주 소임을 보고 있었는데, 비보를 받고 공주까지 두 시간 내내 참 많이도 눈물을 흘리며 운전했다. 영결식을 마칠 때까지 3일 동안 흘린 눈물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출가 전 주말이면 종종 스님을 뵈었다. 스님과 얼마간 대화를 하다보면 그 자리에서 스르르 잠이 들어 한참을 잠들곤 했다. 참으로 편안했기에 아예 주말에는 책을 챙겨 뵈면,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머무는 처소에 배려를 해 주셨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자연스레 경전을 접하게 되었고, 강원에서 한문 경전을 공부한다는 사실에 매료되어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강원시절 고향 근처를 지나칠 때면 그간의 인연들을 만나곤 했다. 한 번은 고등학교 은사님과 동창생 몇몇을 만나 자리를 했는데, 이전의 습이 발동되어 자리를 파하고 거나한 상태로 스님을 뵈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 공양도 못하고 등을 떠밀리듯 떠나왔다. 하지만 객기에 노심초사 하면서도 정진을 당부하며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상좌 스님이 들려준 일화다. 가을날 누렇게 익은 호박을 짐 져 날라 내려놓기가 무섭게 “이 호박은 누구. 저 호박은 누구!” 미리 지목해서 연락하기에 바쁘셨단다. 평소 베풀기를 좋아 하셨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5톤 트럭으로 한 대 분량의 책을 마련해 주셨기에 그동안 무리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훌연 세월이 흘렀나 보다. 근래 동문수학하던 도반 스님과 주변의 비슷한 연배의 스님들 입적 소식을 간간이 접하며 어떻게든 갈무리하며 회향하는 마음으로 지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입적하신 월하 노스님께서 평소 하신 말씀이 새삼 와 닿는다. “양가득죄(兩家得罪)!” 곧 열심히 정진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승가(僧家)뿐 아니라 속가(俗家)에까지 허물이 된다는 말씀이셨다.

부처님은 자식을 잃고 깊은 시름에 빠져 어찌할 줄 모르는 이에게 ‘어느 집이든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집이 있는지 보시오!’ 위로하셨다. 그동안 ‘시다림’을 통해 느끼는 감상이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구름 한 조각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생사요.
구름이 어찌 실체가 있으리오. 생사 또한 그러 하니라.

어느 대기업 회장의 유품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편액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열심히 정성껏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를 하면서도, 얼마만큼 담담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지내야할 지 반문해 본다.

[불교신문3619호/2020년10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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