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과 계율 실천 강조

견도-수도-무학위 수행계차
‘초전법륜경’에서부터 비롯
구사론 통해 면면히 이어져

등현스님
등현스님

유가행(yogācara)은 말 그대로 선정(yoga)과 실천행(ācara)인 계율을 지혜와 동시에 닦아야 함을 강조하는 측면의 유식이다. 중관학파가 진제(眞諦)의 지혜만을 특별히 강조하였기 때문에 (일반 근기를 가진 수행자들이) 희론에 빠져 선정과 계율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그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서 선정과 계율의 실천이라는 유가행을 다시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초전법륜경>에서부터 불교는 사성제에 대한 바른 앎을 견도, 사성제를 실천 수행하는 것은 수도, 사성제의 수행을 모두 성취하면 무학위라고 말한다. 이는 바로 초전륜경으로부터 비롯된 수행의 계위차제이다. 구사론에서는 견도·수도·무학위를 무루의 수행으로 칭하면서 견도 이전에 유루의 수행을 먼저 닦아야만 할 것을 강조하는데 자량위와 가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자량위와 가행위의 수행을 통과해야만 성스러운 진리의 문에 들어간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구사론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자량위에서는 첫째, 산란한 마음을 오정심관의 대치법으로 가라앉히고, 둘째, 그 후에 사념처를 개별적으로 관하는 자상(自相)을 닦아 나의 본질을 바르게 보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몸은 부정한 것이며(身是不淨), 마음은 무상하고(心無常), 느낌은 괴로우며(受是苦), 법은 자성이 없다(法無我)는 것이다.

이러한 관법으로 나와 나의 구성요소인 오온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진실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가행위에서는 사념처의 공상(共相)을 관하는 것인데, 자아의 구성요소인 오온이 합성된 상태(一合相)를 진실된 모습 그대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자아를 미시적인 상태와 거시적인 상태의 양면에서 관찰함으로써 나와 나의 것에 집착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즉 오정심관(五停心觀), 별상념주(別相念住)의 자량위와 총상념주(總相念住)를 구사에서는 삼현위(三賢位)라 칭한다.

이 삼현위의 수행을 유식에서는 10주(住)·10행(行)·10회향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10가지 믿음과 삼보와 사성제에 대한 움직이지 않는 신심은 10주, 육바라밀과 사무량심의 10가지 실천은 10행, 10행의 공덕을 중생교화를 위해서 돌리는 것은 십회향으로 삼현위에 배대한 것이다. 유식에서는 불과를 이루기 위한 3아승지겁의 수행 중 1아승지겁을 자량위에서 수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삼현위의 수행은 순해탈분이라고 한다.

유식의 가행위에서는 초기불교와 구사의 사념처 수행을 인식 대상인 법(小取)과 인식 주체인 심(能取)을 관하는 것으로 접근한다. 구사론에서 실체화한 물질을 경량부에서는 인식 대상으로, 유식에서는 식으로 환원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물질에 대한 느낌과 개념을 떠나서 따로 물질을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물질은 수·상·행의 법으로 환원되어지고, 이러한 물질의 성질을 난위·정위·인위·세제일위의 사선근을 통해서 깨달아 가는 것이 가행위이다.

난위(煖位)에서는 사물에게 부여된 갖가지 명칭 등은 단지 이름에 불과하다고 관찰하고, 정위(頂位)에서는 명칭에 대응되는 사물은 그 구성요소인 원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합성된 상태 역시 환과 같이 실체가 없다고 관한다. 인위(忍位)는 이러한 관법을 반복적으로 닦아 대상(사물)에 대한 집착을 벗어난 단계를 말하고, 이처럼 이 세 단계에서 명(名)과 물(物)의 비실체성을 관하여 사물(법)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세제일위(世第一位)는 모든 사물(법)이 환이기에 그 대상을 아는 마음 역시 참이 아님을 체득하는 단계이다. 이러한 4가행의 수행으로 인식 대상인 사물과 인식 주체인 의식이 공함을 체득하는 것(변계소집성)이 바로 가행위의 수행이다. 그러나 인식의 대상인 사물이 알라야식의 투사(의타기성)라는 것으로 관하는 것은 견도에서 시작한다.

유식의 견도(통달위)는 초지 보살에 해당된다. 초지에서는 견도의 수행, 2지에서 7지까지는 수도(수습위)의 수행이다. 이처럼 유식의 수행은 초전법륜경으로부터 구사를 통해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불교신문3619호/2020년10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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