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잎에 나노기술 열쇠가…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세계 담겨있고 온갖 티끌 속의 낱낱 세계 또한 그러하네.”
-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중에서 

 

보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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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티끌 하나에도 온 세계가 담겨있고, 그 낱낱 티끌 속에도 온 세계가 담겨있다”라면 나는 그 세계 어디쯤에서 존재하는 것일까? 해인사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법회를 열고 사부대중이 모여 팔만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도량에 새겨놓은 ‘법계도’를 도는 전통이 있다. 그때 대중들이 모두가 합송하는 것이 바로 의상대사가 화엄사상의 요체를 한 편의 시로 압축한 ‘법성게’이다. 그 법성게를 도인(圖印)으로 표현한 것이 ‘법계도’이다. 한가운데 ‘법(法)’ 자에서 시작해서 일곱 자씩 읽어나가면, ‘불(佛)’자에서 끝나도록 고안되어 있다. 원래 정식 명칭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이다. 

매번 법회가 마무리 될 때쯤 이 게송을 합송하다보면 그 내용의 심오함과 정교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범종 소리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울려 퍼지듯, 구절구절마다 깊은 울림과 경이로움을 준다. 특히 그중에서도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부분을 따라 할 때는 ‘신비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정말 그게 진실이고 가능한 일일까?’하면서 어리석은 미혹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말 이 작은 티끌이 시방세계를 머금고 있다고? 눈에 보이는 것에 근거해서 말하고 생각하는 일반적 안목으로는 도통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이 현상 세계를 이루고 있는 최소 구성단위에 대한 의문은 역사적으로도 인류의 큰 관심사였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주제였고 물리학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많이 다루어졌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극미론(極微論)’을 중심으로 한 불교 철학의 논의도 현상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하는데 중요한 주제였다. 

그런데 다분히 고전적 느낌의 이 주제가 최근 4차 산업혁명 속 ‘나노기술’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원자나 분자를 얘기할 때만 해도 물리학 영역의 논의로 이해하고, 피부로 다가오지 않던 주제 나노기술의 등장과 함께 우리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하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나노기술’이다.

4차 산업혁명은 거대한 우주선에 화성으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크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세계 속에서도 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이제 나노기술 그 자체가 가진 경이로움을 말할 것도 없고, 인공지능, 생명공학, 의료, 농업, 환경, 건축 등과 결합하여 엄청난 혁신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도 변화하고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 나노(nano)

4차 산업혁명 기술 중에서 인공지능만큼이나 혁신적인 것이 바로 이 나노기술이다. 현재도 주목받고 있지만 앞으로 기대되는 이 기술의 잠재력은 상상 초월이라고 할 만하다. 요즈음에는 누구나 ‘나노’기술을 말하지만, 나노 기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경우가 많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노기술에 대한 아주 조금의 상식과 이해 정도는 필요하다. 필자 역시 복잡한 것은 질색이지만, 다시금 학창 시절 물리학 또는 화학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나노’는 아주 작다 또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한다. 현재는 아주 미세한 물리학적 계량 단위로서 ‘나노미터(nm)’를 사용한다. n은 10억 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람 머리카락 두께의 약 8만분의 1에 해당하고, 미생물인 박테리아 크기의 1000분의 1정도가 된다.

달리 비교해 본다면, 가장 작은 원소인 수소 원자를 10개 정도 나란히 배열하면 1나노미터의 길이가 된다. 원자의 크기로 환산해보면, 원자 하나가 0.2에서 0.3 나노미터가 되고, 원자 3개를 일렬로 배열하면 1나노가 된다. 이쯤 되면 거의 상상 속의 이야기가 돼버리는 것 같다. 

이것을 작아지는 방향이 아닌 커지는 방향으로 하면 이해가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1나노미터가 1000배 커지면 마이크로미터(μm)가 되고, 마이크로미터가 1000배 더 커지면, 1밀리미터(mm)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밀리미터가 1000배 커지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계측할 수 있는 1미터(m)가 되는 것이다. 나노기술은 이 나노 범위 안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화학적 현상과 특성을 이용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개념은 현대에 이르러 새롭게 이름 붙여진 것뿐이지 과거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물리학이나 화학이 아니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미(微), 섬(纖), 사(沙), 진(塵), 애(埃) 등의 미세 크기의 개념을 이미 사용해 왔다. 이들 표현 중 나노 수준의 크기라면 사(沙)와 진(塵) 사이 정도가 될 것이다.

나노기술이라는 것은 수십 나노가 뭉쳐진 덩어리는 일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수 밀리미터의 덩어리에 비해 물리적, 화학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게 되고, 나노 세계에서는 일상적 상황과는 다른 특이한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점에 착안한 기술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나노기술과 생명공학이 결합한 ‘나노생명공학’ 분야 연구가 활발하다. 이외도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데이터, 생명공학 기술 등이 나노기술과 결합하여 차원이 다른 변화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예를 들어, 나노 크기의 센서와 칩 또는 로봇을 제작하여 그 기기들을 인간의 신체 안에 투입해 작동시킬 수가 있게 된다. 바이오 센서를 인체에 투입해 혈당량을 계속 감시하도록 하고 기준치를 넘기 시작하면 나노 펌프를 이용해 인슐린을 바로 주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나노기술과 생명공학이 결합한 ‘나노생명공학’ 분야 연구가 활발하다. 이외도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데이터, 생명공학 기술 등이 나노기술과 결합하여 차원이 다른 변화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예를 들어, 나노 크기의 센서와 칩 또는 로봇을 제작하여 그 기기들을 인간의 신체 안에 투입해 작동시킬 수가 있게 된다. 바이오 센서를 인체에 투입해 혈당량을 계속 감시하도록 하고 기준치를 넘기 시작하면 나노 펌프를 이용해 인슐린을 바로 주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연꽃 효과

나노기술은 여러모로 불교와 인연이 많은 듯하다. 나노기술을 소개할때, 가장 대표적인 연구가 바로 연꽃잎에 대한 관찰이다. 불교에서 연꽃은 대승불교 사상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아래로는 중생구제에 힘을 쏟는 대승의 보살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뿌리는 더러운 진흙 속에 박혀있지만, 꽃잎은 온갖 더러움에도 물들지 않고 향기를 내뿜는 모습이 대승 보살로서의 수행을 돌아보게 한다. 

여기서 종교적 감성을 깨뜨리면서 생기는 의문 한 가지가 있다. 어떻게 연꽃잎은 오염 물질에 더렵혀지지 않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 나노기술의 열쇠가 숨어있다. 바로 ‘연꽃 효과(Lotus effect)’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항접착 시스템이다. 

비가 내릴 때, 연꽃의 잎과 꽃잎에 묻어있던 먼지나 오염 물질이 빗물과 함께 구슬처럼 모여 흘러내리는 것을 말한다. 현미경으로 연꽃잎을 들여다보면, 연꽃잎 표면이 예상과는 달리 매끄럽지 않고 거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잎을 살짝만 들어 올려도 먼지와 접촉하는 면적이 줄어들어서 먼지가 빗물에 쉽게 씻겨나간다.

연잎은 지름 1나노미터 정도의 물과 친하지 않은 왁스 결정으로 표면이 코팅되어 있다고 한다. 나노 차원에서 거친 표면은 매끈한 표면보다 소수성(疏水性, hydrophobic) 즉 물과 화합하지 않고 물을 밀어내는 성질이 강하다. 그래서 거칠수록 물과 잎 표면의 접촉면적은 줄어드는 것이다. 결국 연잎에 빗물이 내리더라도 그 물방울은 잎 표면을 젖어 드는 것이 아니라 먼지를 흡착하면서 또르륵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연잎의 나노구조에 착안하여 발수 코팅된 지붕이나, 비에 맞아도 오염물질이 그대로 씻겨나가는 옥외 광고판,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는 창문 유리, 추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따뜻한 곳에 들어가도 서리가 끼지 않는 안경 렌즈 등을 응용해서 만들어 내고 있다. 

➲ 나노기술, 생명공학을 만나다

그럼 이 나노기술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지 살펴보자. 우선 무엇보다도 당장 눈길을 끄는 분야는 단연 생명공학 분야이다. 생명공학은 살아 있는 세포의 생물학적 활동이나 효소를 이용하여 산업 공정에서 무언가를 결합하거나 변화시키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 두 개념이 결합하여 ‘나노생명공학’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 이미 약 6000년 전부터 효모를 이용해 맥주나 와인을 만들어 마셨던 인류에게 이 조합이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식품가공 기술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속의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데이터, 생명공학 기술 등이 나노기술과 결합하여 차원이 다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노 크기의 센서와 칩 또는 로봇을 제작하여 기기들을 인간의 신체 안에 투입하여 작동시킬 수가 있게 된다. 바이오 센서를 인체에 투입하여 혈당량을 계속해서 감시하도록 하고 기준치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나노 펌프를 이용하여 인슐린을 바로 주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노 로봇이 혈관 속을 다니면서 유해물질이나 독소를 청소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인체의 미세한 변화를 미세한 로봇을 통해 대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어지간한 질병은 사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래서 앞으로 병원의 존재 이유는 단순히 질병의 치료가 아니라 건강 유지 또는 질병 방지 등의 관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결국 이러한 나노기술은 단순히 특정 영역의 혁신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통 시대의 가치와 개념마저도 뒤흔들 수 있다. 

[불교신문3619호/2020년10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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