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화지형과 만해 한용운

이선이 지음/ 소명출판
이선이 지음/ 소명출판

만해스님 주제로 박사취득
소장학자의 남다른 연구서
기존 연구 비판적 ‘재인식’

“스님이 남긴 족적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의 대표로 3.1 독립선언을 이끈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1879∼1944) 스님. ‘님의 침묵’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저항적 민족시인이기도 하다. 불교계에서는 만해스님의 사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7년부터 매년 만해대상을 시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만해스님 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선이 경희대 한국어학과 교수가 인간 한용운에 대한 이해와 그의 작품의 문학적으로 조명한 <근대 문화지형과 만해 한용운>을 최근 출간했다. 특히 만해스님이 자신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내면서 모색했던 여정을 좇고 있는 이 책은 스님이 남긴 족적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해방 이후 작품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돼 왔는가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이자 불교근대화운동에 앞장선 만해스님은 한국문학 연구자들에게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논문과 비평 등의 학술적 연구는 물론 평전이나 회고문 등의 대중적인 글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연구만도 상당하다. 문학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 분야로 확대되면서 그동안 진행된 만해스님 연구는 그 양만 두고 보더라도 더 이상 새로운 연구가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예상을 넘어선다. 저자는 한용운 연구의 기초자료가 된 <한용운전집>의 오류를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만해스님을 비타협민족주의자로만 국한시켜 이해해 온 기존 연구와 비판적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스님을 하나의 진영 안에 가두어 버리면 자기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한 인간으로서 그가 가졌던 고뇌와 모색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면서 일제강점하의 문화지형 안으로 다시 불러낸다.

만해스님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8월12일 인제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린 제24회 만해대상 시상식.
만해스님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8월12일 인제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린 제24회 만해대상 시상식.

먼저, 저자는 기존의 만해스님 연구가 갖는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재인식하면서 기존 연구가 공백으로 남겨둔 지점을 파고든다. 예를 들어 스님의 활동에 대한 추적이 그것이다. 저자는 스님을 저항이라는 측면에만 국한시켜 그의 생애를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만해스님이 <삼천리>나 <별건곤> 등과 같은 대중적인 잡지에 지속적으로 글을 발표하거나 인터뷰에 응했고, 독자를 위한 신문 연재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는 점 등을 논거로 들면서, 스니이 당대 문화공간 안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면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고 주장했다. 특히 <삼천리>는 친일행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 김동환이 주도한 잡지였고 만해스님은 이 잡지에 자주 글을 발표했으며, 일제 말기인 1941년 8월에 대동아전쟁의 지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김동환이 주도한 임전대책협의회에 참석하기도 했음을 새롭게 밝혀냈다. 저자는 이러한 행적들을 간과한 채 진행된 기존 연구를 비판하며 한용운 다시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1979년에 출간된 <증보한용운전집> 이후에 진행된 연구에서 밝혀낸 사실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저자가 직접 찾은 자료를 더해 새롭게 작성한 만해스님 연보와 작품·논설, 설문, 인터뷰 목록을 제시했다. 저자는 스님이 1911년에 창립한 한시 창작단체인 ‘신해음사’의 회원으로 활동했고 이때부터 만해(萬海)라는 호를 사용한 것으로 봤다. 전집에 법호라고 적시하고 있는 만해가 그의 아호라고 주장하면서, 여러 논거를 들며 전집이 갖는 오류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러한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전집에 수록된 글들 중에서 몇 편은 만해스님이 쓴 글이 아니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또한 재일조선인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김석범의 선학원 관련 증언과 이 증언을 작품화한 소설 ‘1945년 여름’을 통해 만해스님을 둘러싼 여러 맥락들을 상상해 보고 있는데, 저자의 이런 작업은 스님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여기에 책의 말미에 붙여둔 부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과 확인 가능한 자료를 일일이 대조하며 작성한 것으로 관련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한용운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발화되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는 우리 근대사의 지층을 탐사하는 작업과 적극적으로 조우할 때 그의 진면목을 열어젖힐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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