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내가 어떻게 사는지 대중들은 다 안다"

출가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행자와 사미 시절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스스로에게는 앞으로의 출가자로서의 삶을 굳건히 다지는 때이고, 예비출가자로서의 됨됨이를 살펴 훗날 출가자로서의 위의를 갖출 수 있을지 시험 받는 때라 할 수 있다. 이 시절 익힌 습의와 배운 가르침이 오래도록 남는다. 개관을 앞둔 고창 선운교육문화센터 원장 법만스님의 출가담에서도 그 중요성이 엿보인다.

전 선운사 주지 법만스님은 노사 남곡스님과 은사 태허스님의 유지를 계승하는데 힘써왔다. 선운사 주지로 있으면서 직접 상좌들과 도량을 쓸고 일구던 은사 스님이 그립다. 비질을 하는 뒷모습의 스님이 태허스님이다. 낙엽을 치우는 두 스님이 사미 시절 법만스님(가운데)과 법지스님이다.
전 선운사 주지 법만스님은 노사 남곡스님과 은사 태허스님의 유지를 계승하는데 힘써왔다. 선운사 주지로 있으면서 직접 상좌들과 도량을 쓸고 일구던 은사 스님이 그립다. 비질을 하는 뒷모습의 스님이 태허스님이다. 낙엽을 치우는 두 스님이 사미 시절 법만스님(가운데)과 법지스님이다.

 

#1
20073, 경선으로 치러진 제24교구 산중총회에서 선운사 주지에 법만스님이 선출됐다. 46살의 젊은 스님이었다. 당시 최연소 교구본사주지였다. 산중의 많은 어른 스님들이 있었음에도 최연소 본사주지를 선출한 것은 적지않은 사건이었다.

법만스님은 13년전 그때를 떠올렸다. “제가 특별히 유능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주지를 할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은 더욱 아니다. 법만스님은 그 이유를 출가담에서 찾았다.

#2
세 명의 스님이 낙엽을 쓸고 담고 있다. 때는 1982년 가을이다. 앞선 스님이 수북이 쌓인 낙엽을 쓸어모으면 뒤에 있는 두 스님은 낙엽을 치우는 모습이다. 당시 선운사 주지 태허스님과 그 제자 법만스님, 법지스님이 울력하는 모습을 어느 사진가가 찍었다.

은사 태허스님은 일주문에서 천왕문 앞 극락교에 이르는 길을 매일 쓸었다. 짧은 거리가 아닌데도 깨끗이 길을 치우지 않으면 선운사를 찾는 이들에게 예의가 아니다며 손수 비를 들었다. 항상 그 옆엔 제자들이 있었다.

사미였던 법만스님은 새벽 도량석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잠시도 쉴 여유가 없었다. 대부분 힘든 노동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공양은 물론 밭으로, 산으로 다니며 일을 했다. 일은 산더미 같았다. 풍으로 쓰러진 노스님 남곡스님 시봉도 법만스님의 몫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을 대소변을 받아내고 매일 물을 끓여서 목욕 시봉을 했다. 개울가에 나가 빨래를 하면서도 묵묵히 살았다. 눈은 또 어찌나 많이 오는지, 쓸고 또 쓸어도 일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한번쯤 도망갈 궁리를 했을 법하지만 법만스님은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없었다.

사중의 허드렛일과 온갖 일을 다 하고 있는 사중 스님들의 고생을 대중이 모를리 없었다. 지금도 사숙 스님들은 그때의 일들을 거론하며 힘든 시절 선운사를 교구본사로 승격시키고 지켜온 남곡스님과 그의 제자 태허스님의 공덕, 그 밑에서 고생하며 발로 뛰어다니던 법만스님을 이야기하곤 한다. 법만스님은 이것이 최연소 본사주지를 할 수 있었던 이유라며 대중들이 모를 것 같지만 다 안다고 했다.

#3
은사 태허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 당시 종단내 큰 변화의 바람에 선운사가 휘청거릴 때 중심을 잡아준 어른이었다. 선운사가 가장 힘들 때로 꼽는 그때, 태허스님은 남곡스님의 유지를 잇고자 버팀목 역할을 해냈다. 이를 지켜본 법만스님은 큰 산 같은 은사 스님의 면목을 보았다.

제방을 운수하던 법만스님은 노사 남곡스님으로부터 이어진 유지를 잇기 위해 선운사 참당암에 머물게 됐다. 참당암에 선원을 열어 다른 교구 스님들과 교유하며 선운사의 입지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선운사는 그런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당시 상황으로서는 도울 수 없었다. 하지만 법만스님은 뜻을 접지 않았다. 참당암에 선원을 열었고 2007년 본사주지로 선출되기까지 12년 동안 지원 없이 운영해왔다.

법만스님은 대중이 함께 살아가는 청규를 바로 세우는데 엄격했던 은사 스님의 모습을 오롯이 새기고 있다. 상좌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던 공심의 수행자상은 존경심이 절로 난다. 특히 늘 상좌들과 함께 불전함을 열며 시주의 소중함을 가르쳤다. 불전함에서 꺼낸 돈을 다리미로 펴서 반듯하게 정리하던 은사 스님. 시줏돈을 귀하고 무섭게 여기라며 시은(施恩)을 아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말이 귓가에 생생하다.

선운사=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불교신문3619호/2020년10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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