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총림 개산 1218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신라시대 유학자이자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
신라시대 유학자이자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

“최치원은 898년부터 908년까지 10년 동안 해인사에서 수준 높은 학술활동과 종교활동을 했는데, 말년의 학술과 종교 활동이 화엄사상에 집중되었고 그 이면에는 호국사상이 배경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해인총림 해인사(주지 현응스님)가 개산 1218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학술세미나를 10월7일 보경당에서 열고 해인사와 최치원의 인연을 조명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해인사와 최치원의 관계를 밝히는 첫 학술세미나로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해인사 주지 현응스님, 해인총림 전계사 무관스님, 산중원로 선용스님, 해인사 성보박물관장 원학스님, 해인총림 다주 여연스님 등 대중 스님들과 학술세미나를 후원한 경주최씨 종친회 최천규 수석부회장과 종친회 최상규 사무총장, 고운학연구소 최유진, 김영주 명예교수 등이 참석해 세미나의 의미를 빛냈다.
 

학술세미나가 열린 해인사 보경당 모습.
학술세미나가 열린 해인사 보경당 모습.
발표에 앞서 해인사 주지 현응스님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발표에 앞서 해인사 주지 현응스님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발표와 토론에 앞서 해인사 주지 현응스님은 ”올해 10월16일이 해인사의 1218주년 개산일이라는 사실도 최치원 선생이 900년에 기록한 <해인사 선안주원벽기>에 근거했듯 해인사 창건당시의 사정을 전하는 거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고운 최치원 선생의 기록에 의지해 밝히고 있다며, 학술대회를 통해 최치원 선생의 삶이 어떻게 해인사와 연결되는지 살펴보는 기회로 삼고, 신라사회의 누적된 모순이 심화돼 나타난 말기적 상황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던 최치원 선생의 삶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환영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해인사 기록자 최치원(해인사와 최치원의 인연)’을 주제로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최영성 교수는 “최치원은 신라말 관직을 내려놓고 난세(亂世)를 비관, 산림과 각지를 유랑하다가 경주 남산, 강주(현, 의성시)의 빙산, 합천 청량사, 지리산 쌍계사, 합포현의 별서 등에서 유력(遊歷)했으며, 마지막으로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하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인용했다.

그리고 최치원이 가족들까지 데리고 해인사로 들어왔던 배경에는 당시 해인사에 화엄종의 거두이자 최치원의 친형인 현준(賢俊)스님이 주석(駐錫)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최영성 교수의 발표를 참석 대중들이 경청하고 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최영성 교수의 발표를 참석 대중들이 경청하고 있다.
참석자들이 주제 발표와 토론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고 있다.
참석자들이 주제 발표와 토론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고 있다.

이어 2주제 발표자인 군산대학교 역사철학부 김성환 교수는 ‘최치원의 가야산 은둔, 그리고 승선(昇仙)설화’ 연구에서 최치원의 은둔을 난세를 피하기 위한 상황적 은둔이 아닌 세속을 떠나 한층 고귀한 가치를 수호하거나 달성하기 위한 둔세(遁世)의 수행 내지는 성화(聖化)의 과정으로 본 <삼국사기>와 <최치원열전>의 주목할 만한 기록을 소개 했다.

이어진 순서는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의 ‘최치원의 가계(家系), 그리고 불교와의 인연’ , 최유진 경남대학교 명예교수의 ’최치원의 불교관’,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의 ’신라말, 최치원이 차 문화의 전파에 미친 영향’ 순으로 5가지 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에는 경남대학교 정은상 교수, 고려대학교 나우권 교수, 경남대학교 김정대 교수, 경남대학교 김영주 교수, 동국대학교 김호귀 교수, 종합토론과 총평은 (사)고운국제교류사업회 최병주 위원장, 세미나의 좌장은 중앙대학교 유권종 교수가 맡았다.
 

주제 발표 후 토론 모습.
주제 발표 후 토론 모습.

이날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해 16세에 장원급제 할 만큼 뛰어난 유학자이자 문장가로 알려진 최치원이 도교에도 능통했으며, 말년에는 해인사에서 화엄승들과의 교류를 통해 불도에 심취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공감하고 ”유, 불, 도 삼교를 하나의 진리로 회통하는 사상적 토대를 바탕으로 구국과 호국을 염원하며 학술활동에 주력했다”고 그의 삶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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