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가 아닌 사람들까지도
사찰에 발을 들여놓게 하려면
구조적인 문턱을 좀 더 낮추고
심리적인 문도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스님들이 쓰는 공간도
과감히 할애할 수도 있어야
진정 포교 사찰이 되지 않을까

지용스님
지용스님

내가 거주하는 사찰에서는 길 건너편에 위치한 성당과 교회가 아주 잘 보인다. 법당보다 훨씬 큰 마당과 큰 건물을 가지고 있는 두 시설이 묘하게 비슷한 크기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비교해 관찰하기도 한다. 일단 성당은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한 시설이다. 미사를 드리는 웅장한 본당에 신도들이 식사나 차담을 하는 주방이 붙은 식당, 그리고 신부님이 머무는 사제관이 전부다.

물론 군종 업무를 하는 작은 사무실이나 창고 등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필수공간으로 가득 찬 건물이란 생각이 든다. 그에 반해 교회 건물은 당연히 예배당과 목사님 사무실인 목양실이 있지만 그 비율이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신자들이 공부하거나 다양한 활동을 하는 기능을 가진 방들이 교회 구석구석을 오밀조밀 채우고 있다. 

겉보기에 아주 비슷해 보이는 이 두 종교시설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의 숫자는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성당의 경우는 미사가 없는 시간에는 거의 찾아오는 신도가 없다. 교회의 경우는 새벽기도 전부터 늦은 밤까지, 가끔은 목사님이 오지도 않는 날에도 많이들 모인다. 카페 공간, 작은 교육관 등의 시설을 찾아오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하면 늘 북적인다. 

그렇다면 사찰은 어떨까? 특히 포교하는 사찰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져야 할까. 군부대에 위치해 포교를 하는 군사찰도 당연히 그 범주에 들어간다. 때문에 사람들을 품어주고 편안하게 머물도록 하는 공간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혹자는 그런 번잡하고 정돈되지 않는 인파가 우리네 사찰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포교를 주력으로 하는 도심 사찰들에서도 예배 공간과 스님 거주 공간에 비해 신도들을 위한 공간이 의외로 협소한 경우를 많이 본다. 물론 사찰 공간 자체가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 신도 편의공간을 다양하게 마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더불어 그 공간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간단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교하는 사찰의 기본은 신도들의 대한 배려이다. 즉, 공간을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크게 생각해서 신도가 아닌 사람들까지도 사찰에 발을 들여놓게 하려면 구조적인 문턱을 좀 더 낮추고 심리적인 문도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스님들이 쓰는 공간도 과감히 할애할 수도 있어야 진정 포교 사찰이 되지 않을까.

사찰은 결국 한정된 공간이다. 이 한정된 공간을 신도들 혹은 미래의 불자들을 위해 내어주려면 어딘가의 공간은 양보할 수밖에 없다. 스님들의 생활을 우선할 것인가, 신도들의 편의를 우선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그 밖의 일반인들도 배려할 것인가 고민과 선택이 필요하다. 신도나 일반인들을 위한 공간이 양보이고 침해라고 생각한다면 포교는 힘들어진다. 교회의 공간 구조가 왜 그러한지, 그리고 그곳은 왜 북적이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엄숙하고 잘 마련된 법당 공간이면 충분하다 말하는 불자들만 만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한 근기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널리 품을 수 있는 조금 더 넉넉한 사찰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사찰을 운영하는 사람이 깊은 고민과 배려를 바탕으로 공간을 마련한다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순식간에 느낄 수 있고 어느새 모여들어 머물게 되는 법이다. 

[불교신문3618호/2020년9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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