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기 짝이 없는 숨쉬는 일만이라도 잘 해봐요”

불교상담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이야기다. 임인구의 ‘어엿한 그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마음이, 또 그 마음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온전한지를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이미 어엿하게 서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연기법에 근간하여 역설과 상호관계성의 원리로 안내한다.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그리고 마음 자체를 친구처럼 또는 연인처럼 대하는 직접화법으로 구성된다.

임인구
임인구

그대여, 사소한 것에 대한 화는 똑같이 사소하게만 취급된다. 그래서 그대는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아니면 적당히 묻고 지나가려 할 것이다. 그대에게 그것은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이 사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여, 이 세상은 사소한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하나하나가 다 사소한 사건들로 펼쳐지는 것이 곧 삶이다. 그래서 사소한 것을 무시하려는 그대는, 실제로는 삶 전체를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삶 전체를 무시하는 그대가 자주 보이게 되는 모습이 있다.

그것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며 크게 부친 빈대떡처럼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대자로 뒹굴뒹굴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사소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대범한척 하고 있는 그 모습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습이 결코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러한 그대에게 잔소리를 하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그대가 그에 대해 격하게 짜증을 내는 모습으로도 쉽게 증명된다. 이처럼 사소한 것을 무시하는 상태는, 실제로는 언제라도 촉발될 폭발을 대기하듯이, 사소한 것에 늘 화가 나있는 상태와 같다.

그리고 사소한 것에 늘 화가 나있다는 것은, 삶 전체에, 곧 이 모든 것에 다 화가 나있다는 것이다. 그대는 이와 같이, 이 모든 것에 다 화가 난다. 그대가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그대에게는 다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대는 화가 난다. 사실 그 무엇도 사소한 것이 없이, 전부 다 그대가 처리해야 하는 숙제인 것만 같기에 그대는 너무나 지치게 된다. 그렇게 힘들어서 그대는 화가 난다.

그러나 그대여, 기억해보자. 그것들이 숙제가 된 것은, 바로 그대가 숙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전부 다 그대가 하고자 했기에, 그것들이 일로서 된 것이다. 스스로 숙제를 만들어 놓고, 그 숙제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자기 혼자만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냐고 한탄하며, 이 세상은 원래 이렇게 비극적으로 혼자 사는 것이라고 냉소하는 것이, 바로 화를 내는 그대의 모습이다.

그리고는 그 숙제를 낸 주체가 그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인 것처럼 그 책임을 전가한 뒤, 그대는 그 숙제로부터 철수해 빈대떡을 얼마나 찰지고 크게 부칠 수 있는가만을 일종의 심심풀이용 게임처럼 삼아 행위하는 것이, 바로 사소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대범한척 하고 있는 그대의 모습이다.

그대여, 그러나 어떻게 그대가 그대 자신을 속일 수 있겠는가. 그대는 결코 대범하지 않다. 그대는 빈대떡이 아니라 오히려 빈대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빈대다. 그대에게는 사소한 것이 그대의 목숨을 걸만큼 정말로 중요했다. 그대는 사소한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사소한 것을 정말로 잘 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것이 그대에게 중요한 숙제가 된 것이다.

그렇게 그대는 사소한 것이 곧 이 삶 전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가장 작은 빈대 안에 가장 큰 우주가 담겨 있다는 그 아름다운 진실을 깨닫고 있었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그러한 그대는 마치 우주의 경영자와 같았다. 그러나 무능한 경영자였다. 이 사소한 모든 것이 우주와 같다는 놀라운 사실을 눈치챘으나, 그러한 까닭에 오히려 이 모든 것에 대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앞이 막막한 경영자였다. 그래서 그대는 자신의 무능함에 좌절했고, 자신의 무능함에 화가 난 것이다. 자신이 작고 못난 빈대처럼 느껴졌고, 그 빈대가 된 자신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게 여겨진 것이다.

그렇지만 그대여, 이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면서, 정작 그대 자신이 작은 것이 되었을 때는 그것을 못마땅해하는 일은 조금도 공정하지 못하다. 그대가 빈대가 되었다면, 그대는 그 빈대에서 출발하는 일이 마땅하리라. 그대의 시선 또한 작은 빈대만큼이나 작은 시선이다. 때문에 앞이 막막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빈대에게 먼 앞이 안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대여, 그대가 사소한 것을 예찬한다면, 지금 그 사소한 시선 또한 이해해보라. 그 사소한 시선에 비치는 가장 사소한 것만을 한번 바라보라. 대범하게 멀리 볼 수 없는 그대의 얕은 그 시선 위에, 가장 가깝게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그대의 코일 것이다.

그것이 그대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대의 눈앞에 있는 가장 사소한 것이다. 그대는 오직 사소한 것만을 중요한 숙제로 삼으며, 그것만을 열심히 해왔다. 그렇게 그대는 사소한 것을 향한 그대 자신의 사랑만을, 목숨을 걸고 증명해왔다.

그대여, 그렇다면 이제 똑같이 그대의 숨을 걸고, 눈앞의 작은 코를 통해 하는 일인 숨만을 쉬어라. 그 사소하기 짝이 없는 숨쉬는 일만을 잘 해보라, 그대여. 이것이 빈대인 그대가 정말로 해야만 했던, 가장 가까이에 있기에 가장 사소한 바로 그 첫 번째의 숙제다.

그리고 이 첫 번째의 숙제만 끝내고 나면, 그대의 마음은 크게 가벼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제일 큰 숙제였기 때문이다. 그대가 해야 할 그 모든 숙제들에 치여 있을 때, 그대는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제 그 가장 힘든 것을 해낸 것이다.

좋다, 그대여. 이제 나머지는 별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숙제인 숨도 이렇게 잘 쉴 수 있었던 그대에게는. 숨쉬기를 못했다면 차가운 돌덩이와 같을 이 몸에, 이렇게 부드럽고 따스한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일조차도 잘 해낼 수 있었던 그대에게는. 나머지는 정말로 별 문제도 아니다. 빈대와 같이 사소한 것들이다. 그저 그대를 통해 드러나야 할, 사소한 것을 사랑하는 그대가 아니라면 누구도 드러내지 못할, 바로 그 아름다운 일들일 뿐이다.

그러니 빈대떡은 그만 부치고, 가보자, 그대여. 또 숨쉬러 가보자. 이 모든 사소한 것들이, 이제오나 저제오나 그대만을 기다린다. 자신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아름답게 살려내줄 그대만을 올망졸망 기다린다. 그 작은 눈빛들만을 따라, 아무리 먼 곳에서도 바로 눈앞처럼 알아볼 수 있도록, 별빛처럼 반짝이며 그대를 부르는 그 눈빛들만을 따라, 한번 가보자, 그대여.

오직 눈앞의 것과만, 한번 살아보자, 그대여. 그대의 눈앞에 있는 것은 언제나 가장 사소한 것이다. 그렇게, 그대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언제나 그대의 눈앞에 있다.

[불교신문3618호/2020년9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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