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선택하는 것은
선거 때 정당 선택과 달라
구태여 덜 나쁜 종교를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추상적이고 애매한 조언이 아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불교 관점에서 제시해야 합니다

윤성식
윤성식

유럽에서 페스트가 대유행 했을 때 유럽 인구의 3분의1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은 페스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습니다. 하지만 온 세계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페스트가 사라진 뒤에 기독교는 쇠퇴했습니다. 페스트가 유럽을 뒤덮을 때,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전염병의 특성상 사람이 모여 있으면 전염병은 더욱 퍼집니다. 교회로 갈 것이 아니라 산속으로, 전원으로 흩어져야만 했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죄를 중시하는 종교입니다. 페스트가 인간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 회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죽 채찍으로 자신의 등을 때리며 피 흘리는 모습으로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가죽 채찍에 날카로운 금속 조각을 붙여 등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회개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물론 신의 섭리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원하는 종교는 페스트로부터 사람을 구원해 주는 종교입니다. 기독교가 교회가 거기에 응답하지 못하자 페스트가 끝나고 기독교는 쇠퇴하고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립니다. 저는 코로나19 이후로 개신교, 천주교, 불교 모두 쇠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면 전통적인 종교는 쇠퇴합니다.

잇따른 교회발 코로나19 확산으로 개신교에 대한 비난이 상당합니다. 천주교와 불교가 반사이익을 누릴 거라는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사람이 종교를 선택하는 것과 선거 때 정당을 선택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모든 정당이 한심해도 우리는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정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덜 나쁜 정당, 차선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종교 없는 세상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구태여 덜 나쁜 종교를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기대하는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종교는 모두 도태됩니다.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이마저도 변합니다. 약간 괜찮은 이미지로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불교가 쌓아온 이미지는 약간 괜찮은 이미지는 되는 걸까요?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개신교 인구는 증가했지만 천주교와 불교 인구는 줄었습니다. 어떤 목사에게 개신교 인구가 늘어 좋겠다고 말했더니 전통 교회는 신도가 줄었지만 이단 개신교단의 인구가 크게 늘어 전체 개신교 인구가 증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국민은 종교의 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변화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 나쁜 방향으로의 변화입니다 심지어 나쁜 방향으로의 변화인 이단도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교에서도 이단이 아닌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일어나야만 되겠습니다. 

출가자와 재가자의 생각, 말, 행동은 국민에게 불교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한마디로 좋은 업을 지어야겠습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추상적이고 애매한 조언이 아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불교의 관점에서 제시해야 합니다. 불교를 믿고 나서 삶이 더 좋아져야만 합니다. 더 행복해져야 합니다. 종교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국민이 종교를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불교신문3617호/2020년9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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