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진명스님
진명스님

살아온 시간 위에 경자년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지루하고 사납게 쏟아 부은 폭우, 그리고 전국토를 헤집고 지나간 태풍만이 저장될 것 같은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경자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며 모든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했고, 하늘과 바다의 길이 막히고, 소소하게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의 일손까지 멈추게 했다. 전 국민이 마스크를 하고 다녀야 하는 진풍경이 연출됐고, 마스크를 벗고 마음대로 숨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봄은 모습을 감추고 여름이 슬그머니 찾아 왔다. 

‘여름이 되면 뜨거운 태양 아래 코로나가 세력을 잃어가겠지’ 라고 생각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은 인정사정 없이 쏟아 부은 폭우에 속절없이 사라졌다. 소박하게 살아가던 보금자리와 넓고 푸른 들판과 일 년 농사를 수마에 내어주어야 했고,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폭풍이 지나가며 작은 땅덩어리, 그것도 반으로 선을 긋고 사는 대한민국 곳곳에 험한 생채기를 남기고 북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 문득 가을 향기를 품은 청량한 바람결이 스며들고 있다. 그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기라도 하듯 보드랍게 살랑거린다. 

우리는 그동안 신종플루와 에볼라 같은 몇 가지 바이러스를 경험했다. 하지만 직접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으면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간들에게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경고를 시작했다. 이 경고를 우리 인간들은 겸허하고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생활 방식을 작은 것에서부터 바꾸어 가야 한다. 편리해서 무심하게 사용했던 비닐봉지와 종이컵 하나부터 사용을 자제하며 그동안 편리를 추구하며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빠르게 변한 생활 속 풍경들을 접하고 있다. 아장아장 걷는 유아부터 팔순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버스를 탈 수 없고 외출도 할 수 없는 현실과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앵커와 출연자 사이에 가림막이 설치됐고, 식당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회의 장소에도 예외가 없다.

심지어 어린이집 유아들이 오히려 어른들보다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모습을 보며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웃었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들며 활발하게 뛰고 놀며 자라야 하는 어린 아이들이 맑은 공기를 마음대로 호흡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이 현실이 마음 아파 씁쓸하기도 했다.

어쩌다 외식 자리가 있어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뭔가 매운 것 때문에 기침을 하게 되어도 주변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버스나 전철에서도 마음 놓고 기침 한 번 시원하게 할 수 없다. 초중고교와 대학까지 비대면으로 수업을 들어야 하고, 재택근무가 보편화 되는 회사도 생겨나고, 생활 속 거리두기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모든 관계의 거리두기가 되어가는 그런 현실이다.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종교계는 방역수칙을 더 솔선해서 지켜야 하고 선도해야 하는 단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인을 빙자해 신도들을 미혹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런 관종들은 시대나 국가, 나라와 인종을 불문하고 다 존재한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사바세계이고 시대를 말세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우리는 공업의 중생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려운 상황을 함께 감당하고 인내하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외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또 정부나 어느 단체와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는 이미 우리 앞에 닥친 일을 우리 스스로가 살피고 조심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고, 그 삶의 페이지는 스스로 채워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 배가 고픈데 남이 밥을 먹는다고 배가 부르지 않듯이, 남이 땅을 사는데 내 재산이 불어나지 않듯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각자 삶에서 자기 몫이 있는 것이다. 비움과 탐욕까지도 그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원인과 책임을 따지기 전에 내가 무엇인가 한 가지라도 실천하고 절제해야 자신의 삶의 패턴이 바뀔 것이며, 그것이 가족과 이웃을 위하는 일이 되고, 조금 더 나아가 이 사회가 변화하는 일에 작은 씨앗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이 있어 옮겨 본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트 대성당 아래 지하 묘지에는 20여 명의 영국 국왕과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찰스 디킨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찾아보고 가는 주인 모를 묘비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 평범한 묘비에 적힌 글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에 한계가 없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꿨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법회 운영 등 불자들의 신행활동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진은 코로나 방역 지침에 따른 ‘실내 인원 제한’ 조치로 인해 조계사 대웅전 밖에서 기도를 올리는 불자 모습. 불교신문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법회 운영 등 불자들의 신행활동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진은 코로나 방역 지침에 따른 ‘실내 인원 제한’ 조치로 인해 조계사 대웅전 밖에서 기도를 올리는 불자 모습. ⓒ불교신문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게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했을지!’ 

그렇다. 내가 변하지 않고는 세상 어떤 것도 변화 시킬 수 없다. 기도도 자신이 해야 기도의 공덕이 자신을 비롯해 가족과 그 주변 인연으로 회향되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 지구의 환경을 살피기 위해 비닐봉투 한 장 종이 컵 하나부터 줄여야 하고, 코로나19를 소멸시키기 위해 자기의 손부터 씻어야 하며 자신의 입과 코를 살펴야 한다. 자신을 위하는 실천이 곧 이웃을 위하는 일이고 사회와 국가를 위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올해 우리나라 상황을 지켜보며 확인하게 되는 사실이다.

더불어 산문이 폐쇄된 요즘 사찰로의 발걸음을 멈추고 집에서 매일 새벽 마음을 가다듬고 정결하게 올리는 어머니의 기도가 힘든 가족들에게 격려가 될 것이며, 사찰에서 만나는 도반들과 기도의 흐름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힘이 될 것이고, 그런 기도의 울림이 불교를 바르게 유지하는 실천의 힘이 되지 않겠는가. 평범하고 힘없는 내가 올리는 기도가 무슨 힘이 될까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세상은 평범하고 힘없는 대중이 실천하는 힘으로 유지되고 발전해 가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국민은 대책을 만든다’ 라는 말. 

요즘 스님들도 모든 모임과 강연 등을 거의 취소하고 있다. 만남의 자리가 거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SNS로 많은 것을 소통하게 됐다. 이 또한 팬데믹 영향이 가져온 승가에 새로운 문화가 됐다. 또한 사찰이 창건된 이래 이렇게 오래 산문을 폐쇄하고 불자들까지 출입을 제한해 본적이 없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비대면 법회와 기도를 고민해야 했고, 예고 없이 다가 온 이 상황을 지혜롭게 건너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환경이 파괴되면서 생겨나는 기후문제에 대비해 사찰 환경을 보존하고 지켜갈 수 있는 적극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며,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생겨나는 종교인구 감소에 대한 대비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불교와 불심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된다면 더없이 좋을 일이다. 

그리고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겠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거의 소멸되고 평범한 일상을 지속할 수 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 했던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어떤 학자는 이번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환경을 보존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의식에서 생태백신이 생겨나고 생활 속 거리두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행동백신을 만들어 간다면 일상으로 조심스럽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 개인의 삶에서부터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본질적인 삶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며 <법구경> 교학품에 나온 부처님 말씀을 마음에 새겨본다. ‘힘써야 할 일 아니면 배우지 말고, 힘써야 할 일이거든 마땅히 행하라. 생각해야 할 것 알고 나면 모든 번뇌 사라지게 되리라.’ 군더더기 없는 이 말씀 앞에 번뇌를 놓아 본다.

[불교신문3617호/2020년9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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