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에게서 시작된 순례의 정신은
신라의 고승을 넘어 현대로 전해져
상원선원의 천막결사 정신을 잇는
45일간 총1080km를 걷는
인도만행결사로 이어진다

불교는 자정의 성찰과
솔선수범하는 거룩한 실천의
행보를 앞장서서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현스님
자현스님

붓다를 흔히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열반하신 ‘길 위의 성자’라고 한다. 길을 한자로는 진리를 나타내는 ‘도(道)’라고도 하므로, 붓다를 진리에서 와서 진리로 가신 분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 표현은 붓다를 상징하는 타타아가타(tathāgata, 여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붓다는 가비라국의 왕자였지만 당시의 해산 풍습으로 인해, 모후인 마야부인은 친정인 콜리국으로 가는 도중 길에서 붓다를 해산하게 된다. 룸비니 동산에서 발생하는 길 위의 탄생이다.

붓다의 열반 여정은 현존하는 8종의 열반 문헌들을 통해서 소상한 루트가 확인된다. 여든의 노쇠한 붓다는 갠지스강 북쪽인 바이샬리에서 최후의 안거를 마치고, 서북쪽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여로를 감행한다.

혹자는 붓다께서 고국인 가비라국으로 가려고 했다지만, 수년 전 석가족은 코살라국의 왕 비유리에게 참혹한 학살을 당하고 도시마저 철저히 파괴됐다. 이때 붓다는 석가족의 학살 직후 가비라를 방문했는데, 당시 복받치는 슬픔 속에서 ‘내가 다시는 가비라를 찾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신다. 이로써 본다면, 붓다의 마지막 종착지는 가비라가 아닌 열반의 땅 쿠시나가라였음을 알 수 있다.

붓다는 열반의 길 위에서 시자인 아난에게, 당신께서 3개월 후에 열반에 들 것을 고지하신다. 이때 아난이 더 이상 제자들이 스승을 친견할 수 없는 현실을 비통해하자, 붓다께서는 4대 성지의 순례를 권면하시며 그 수승한 공덕을 찬탄하신다.

“나의 사후에 신앙심이 두터운 이들은 여래를 기념할 만한 4곳을 순례하며, 여래를 생각하고 깊은 종교심을 일으키게 된다. 어떠한 곳이 넷인가? 그것은 ①탄생지인 룸비니와 ②성도지인 부다가야 그리고 ③설법지인 사르나트와 ④열반지인 쿠시나가르이다.”

이렇게 붓다의 옥음을 통해서 불교의 성지순례 역사는 첫 페이지가 시작된다. 이후 성지순례는 붓다를 친견하고 불법을 증장하는 최고의 수승한 공덕행으로 신속하게 자리 잡힌다.

중국불교의 위대한 역경가이자 세계 3대 기행문의 저자이기도 한 현장은, 자신의 인도행 목적을 <자은전> 권1에서 ‘천제도수(天梯道樹)’의 참배로 들고 있다. 천제도수란, 하늘에 이르는 계단과 진리의 나무 즉 보리수라는 의미로 상카시아와 부다가야를 가리킨다. 즉 현장은 상카시아와 부다가야의 순례를 희구했던 것이다.

인도의 성지순례는 비단 중국 승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 외에도, 의정의 <서역구법고승전>에는 혜업과 현태 등 8명의 신라 구법승의 이야기가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붓다에게서 시작된 순례의 정신은 이제 신라의 고승을 넘어 현대에 새로운 열매를 맺고 있다. 상원선원의 천막결사 정신을 잇는 45일간 총1080km를 걷는 인도만행결사가 그것이다.

순례는 내면을 관조하는 성스러운 걸음이다. 오직 여래만을 생각하는 고난의 행로 속에서 스스로가 성취되며, 실천을 통한 움직임 속에서 한국불교는 맑아질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지로 기독교가 부각되면서,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절이 됐다. 이러한 때 불교는 자정의 성찰과 솔선수범하는 거룩한 실천의 행보를 앞장서서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불교신문3616호/2020년9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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