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너무 멀어진 ‘외식’
그 자리 꿰찬 배달음식 밀키트…
한솥밥 나눠먹는 식구 그리워

이소영
이소영

요즘 코로나19로 외로운 친구가 있으니 그 이름은 ‘외식’. 그 자리를 꿰찬 친구들이 있으니 배달음식과 각종 밀키트 식품들이다. 종류도 다양한데 속도까지 빠르니 배달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할 수밖에. 그래서인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배달음식을 나눠먹는 가족보다 한솥밥과 직접 조리한 음식을 나누는 식구의 의미가 그립다.

그러다보니 ‘띵동’ 소리 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집 밥의 소리가 더 정겹게 다가온다. 직접 장을 봐온 식재료를 씻을 때 들리는 물소리, 그것들을 다듬으며 나누는 이야기 사이로 들리는 웃음소리, 도마 위 경쾌한 탁탁탁, 가스불이 들려주는 보글보글, 지글지글, 전기밥솥이 밥 먹자는 신호로 내는 치익치익 소리들이 모여 집 밥 찬가를 부른다.

들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친 나물을 잡곡밥에 한데 버무려 볼 터지게 먹는 절집 비빔밥 버전, 떡볶이와 라면, 주먹밥으로 만든 분식집 버전, 냉장고 안에 있는 각종 밑반찬을 고풍스런 그릇에 담아 쫙 깔아 놓고 먹는 한정식 버전, 김치볶음밥에 김 가루를 뿌린 뒤 리듬감있게 흔들어 먹는 옛날도시락과 함께 하는 그 때 그 시절 추억의 교실 버전, 마트에서 사다놓은 떡갈비와 야채들을 이용해서 만든 수제버거와 수박주스가 세트 메뉴인 패스트푸드 버전, 잘 안 쓰는 에어프라이를 꺼내서 옛날 통닭구이와 감자튀김으로 치맥을 즐기는 호프집 버전, 알록달록한 야채와 과일을 정성껏 싸먹는 월남쌈과 함께 하는 건강한 채식주의 버전, 비 오는 날엔 해물파전에 막걸리로 멋을 내는 노포 선술집 버전, 새콤한 비빔국수와 진한 콩국수로 더위를 날리는 국수집 버전, 일요일 늦게 일어나 호밀빵과 오믈렛, 가정식 샐러드로 즐기는 브런치 버전까지. 

매일 매일 버전을 바꿔가며 먹는 집밥에는 어떤 외식이나 배달음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맛깔스런 정이 배어있다. 밥을 짓듯 우리가 한 식구라는 공감대를 지어주며, 지난 추억도 떠올려 주고 새로운 추억도 만들어 주는 맛난 정이 있기에 이를 불편해 하기 보다는 잘 활용해 보는 것도 슬기로운 집콕생활이리라.

공양물이 자신에게 오기까지 깃들여진 정성에 감사하며 정진을 다짐하는 불교의 오관게를 실천하는 것이 집쿡(Cook)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밥 먹는 모습이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여겨진 게 사실이다. 자 그럼, 오늘 당장 우리 집만의 개성이 담긴 집밥 드라마 한 편 찍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아까 못 생긴 감자가 이 조림이야?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더니 진짜 맛있네.” “내가 좋아하는 가지찜이네. 배달도 안 돼 못 먹었는데 드디어 소원 풀었네.” “반찬가게에서 이 정도 잡채면 이만 원 정도 될 거야. 근데 가격은 반값에 양과 맛은 두 배니 돈 번 느낌이네.” “역시 겉절이 김치는 쭉쭉 찢어 먹어야 제 맛이지.” “울퉁불퉁한 데 이 복숭아 당도 끝내주네.” 이런 대화가 오가며 먹는 집 밥이야말로 코로나도 울고 갈 꿀맛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베란다 너머로 들리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보다 직접 담근 오미자차를 마시며 나누는 맛있는 이야기가 있는 그곳이 바로 우리의 소박한 소망인 저녁이 있는 삶이리라.

[불교신문3616호/2020년9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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