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
이봉주

올해는 장마가 유난히도 길고 지루했다. 내가 어릴 적에 장마가 지면 방 안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양동이로 받쳐놓고 아버지는 지붕 위로 오르셨다. 철없는 우리는 강가로 뛰어가서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구경하곤 했다. 상류 마을의 피해로 집이 부서진 잔해와 가축들이 떠내려 오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힘 좋은 청년들은 밧줄에 갈고리를 걸어 떠내려 오는 목제나 가축들을 건져 올리기도 했는데 더러는 몸에 밧줄을 묶고 직접 강물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귀에 가축의 정보가 담긴 표식이 있어 주인을 찾아주지만 50여 년 전, 당시에는 먼저 건지는 사람이 임자였다. 가난한 살림에 돼지나 소 한 마리 건져 올리면 경제적으로 큰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요즘은 댐도 생기고 제방도 쌓아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올해처럼 50여 일 이상을 퍼붓는 비에는 피해가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전남 구례 사성암 대웅전 앞에서 풀을 뜯는 소 떼 사진이 문득 불교신문 지면에서 눈에 띄었다. 축사가 침수되자 10km의 산길을 걸어서 올라온 소들이다. 사진만 보면 얼마나 한가롭고 평화스러운가? 심우도의 마지막 한 단계의 벽화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심우도를 비롯해 십이신장을 상징하는 12종류의 동물 중 소는 전통사찰은 물론 최근에 중창되는 사찰 벽화 속에도 등장한다. 불교와 소가 얽힌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책에서 읽은 고승들의 소와 관련된 일화가 기억난다. 

사냥꾼 노릇을 그만두고 마조 스님을 따라나선 혜장 스님과의 대화에서 소를 치는 것은 도를 닦는 것으로, 고삐는 번뇌를 다스리는 마음으로 묘사된다. 또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수백번을 질문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묵언수행을 하던 경허 스님은 누군가 밖에서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죽어서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될 걸세”라는 소리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소는 오래전부터 불교에서 인간의 본성이나 수련 과정으로 묘사되었다. 그러고 보면 소들이 걸어간, 절간으로 가는 길은 지상의 상처 입은 모든 마음들이 부처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일 지도 모른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경제활동에 제한을 받아 나도 힘들고 모두가 힘들다. 오늘은 나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 사성암으로 가는 길을 황소걸음으로 오르고 싶은 날이다.

[불교신문3616호/2020년9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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