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과 시로 배우는 ‘선(禪)의 가르침’
옛 그림과 시로 배우는 ‘선(禪)의 가르침’
  • 허정철 기자
  • 승인 2020.09.21 11:10
  • 호수 3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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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소재로 그린 선화
마음의 이치 노래한 선시
함께 담은 ‘禪예술 인문서’

“빈 여백의 공간 채우며
담담한 글의 향기 발하길”

선의 통쾌한 농담

김영욱 지음 / 김영사
김영욱 지음 / 김영사

왜 스님은 강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내를 태연하게 보고만 있을까? 왜 스님은 매서운 얼굴로 한 손엔 장검을, 한 손엔 고양이를 그러쥐고 있을까? 왜 사내는 경전을 박박 찢으며 호기롭게 웃고 있을까? 자신의 마음을 깨우치고 철저하게 밝히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던 선(禪)의 구도자들의 깨달음을 소재로 그린 선화(禪畵)는 마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때문에 선화를 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 같은 의문을 가져봄직 하다.

이런 가운데 옛 그림을 보며 차담 나누기를 좋아하는 전통미술 연구자 김영욱 전 한국전통문화대 강사가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한중일 옛 그림 속 숨은 이야기를 선사들의 시와 함께 흥미롭게 담아낸 선 예술 인문교양서 <선의 통쾌한 농담>을 최근 펴냈다.

오랜 시간 전통미술을 연구하며 글을 매만져온 저자는 선화의 숨은 뜻을 다채롭게 밝혀줄 선시를 다양한 문헌에서 엄선해 수록했다. 또한 이와 관련된 일화와 배경을 작가 특유의 친근하고 담박한 문체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특히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이 진하게 배어 있는 설명은 그림 속 인물과 배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고사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분발하도록 만든다면, 선종화는 우리에게 마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선종화가 주관적이고 암시적인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화면 속 인물들은 단지 이야기만 나누고 있거나 텅 빈 하늘이나 꽉 찬 밝은 달을 보고 있거나 잠만 자기도 한다. 물론 특정한 사건을 그린 장면도 있지만, 일상적인 생활을 그린 장면이 대부분이다. 처음 그림을 마주하면 그림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이처럼 선화는 불교 선종의 교리나 선종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을 말한다. 선종은 자신의 마음을 직관적으로 깨우치고 철저하게 밝히는 것을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본다. 정신적 체험의 경지를 직관적 시각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선화다. 즉 말이나 글로는 묘사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회화적 은유에 가깝다.

또한 단번에 깨닫는 ‘돈오(頓悟)’를 강조하는 선의 정신답게, 화면에 담긴 필선 역시 거침없고 간결하다. 먹선과 담채, 그리고 여백이 만들어낸 세계를 응시하다 보면, 고즈넉한 산사를 깨우는 풍경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진은 '선의 통쾌한 농담'에 수록돼 있는 이수민(1783~1839) 作 ‘고승한담’.
‘선의 통쾌한 농담’에 수록돼 있는 이수민(1783~1839)作 ‘고승한담’.

형식이나 격식에서 벗어나 고도로 정제된 언어로 깨달음을 노래한 선시(禪詩) 또한 선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무심히 툭 던진 시구 하나하나에는 궁극적 깨달음의 정수가 스며 있고, 시구 사이사이마다 무한의 우주가 펼쳐져 있다. 선시 역시 선화와 마찬가지로 선사들의 번뜩이는 깨달음과 선의 섬세한 정신을 표현하기에 적격이었다.

때문에 저자는 대표적인 39점의 선화와 이 그림에 담긴 숨은 의미를 풍부하고 생생히 드러내줄 39수의 선시를 가려 담고, 이를 쉽고 친절하게 읽어냈다.

제1장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일화와 선을 깨닫게 되는 계기를 그린 선화 이야기를 풀어냈고, 2장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에서는 여러 선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마음이 어딘가에 얽매이거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심했던 옛 선사들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마지막 3장 ‘도법자연(道法自然) 선지일상(禪旨日常)’에서는 옛 선사들이 자연과 일상에서 선의 이치를 깨우쳤던 그림과 이야기를 담았다. 부록에는 선종의 기본 개념과 선화의 흐름을 정리하고 선종의 주요 계보도를 추가해 한눈에 전체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180도 펼쳐지는 제본 방식으로 엮어 독자들이 모든 글과 그림을 편히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옛글에 ‘바람이 꽃을 스치면 향기를 발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내 글이 빈 여백의 공간을 채우면서 담담한 글의 향기를 발하길 염원한다”면서 “언어의 속도는 더디지만, 덜어내고 비워내고, 억지로 여백을 채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옛 그림을 통해 하루를 반추하는 글의 향기가 읽는 이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의미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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