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 소여물 끓이며 읽던 편지…
경전공부하고 강원 강의하며 ‘作文’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과 독서
연재 회향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행스님
선행스님

체험하고 사유한 바를 분명하고 논리적인 질서로 표현하는 일이 작문(作文) 이겠다. 연재한지도 어느덧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지금 쓰고 있는 글이 과연 그에 부합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애당초 생각하기를 출가하여 강산이 세 번 변하고도 몇 해가 지나는데, 무엇인가 정리하고 갈무리해야겠다는 소박한 마음에서 선뜻 글을 쓰게 되었다. 정녕 무모한 결정인줄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시은(施恩)에 보답해야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앞섰다.

10년 전, 1년을 연재할 때는 애끓는 심정에 환장하겠다는 표현을 쓸 만큼 문장이 되지 않아 괴로워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히 지금은 긴장되면서도 조금은 담담히 임할 수 있어 스스로 위안이 된다.

돌아보면, 지난날 인연으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나 싶다. 일찍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일기를 썼고, 그렇게 출가 전까지 줄곧 쓴 일기장은 친한 친구에게 전해 주었다. 어려서는 책읽기를 좋아해서 한때는 칠갑산 대표로 글짓기 대회에 종종 나아갔고, 어른들로부터 “소나기에 곡식 널은 멍석이 떠내려가도 나 몰라라 할 녀석!”이라는 지청구를 이따금 들었다.

1985년 초가을. 출가할 당시만 해도 농촌에서는 대부분 소여물을 가마솥에 직접 끓였다. 땔감대신 4단 서랍장에 가득한 편지를 일일이 살펴 아궁이에 불태우며 마음을 정리하는 동안 여물이 끓었다. 본격적인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소양이라도 갖춰야겠다는 생각으로 중학교 3학년 중반에 급우들로부터 문학 서적을 모아 꽤나 읽었다. 

그 와중에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열 번 읽으면 연애편지에 달통한다”는 말씀을 듣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섯 번 정도 읽었다. 후반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이라도 치르겠다는 결심을 하고 시험공부에 매진한 관계로 열 번은 채우지 못했다. 합격통지를 받고 이내 마음에 두었던 여학생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을 받고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까지 3년여 주고받은 편지가 참 많았다. 

이후 4년여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여자 친구들과 만남 대신 주고받은 편지 또한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그 무렵 현역으로 입대한 3명의 친구들로부터 일주일이 멀다 않고 날아오는 편지에 일일이 답장하여 받은 편지까지 모조리 불태우며 소여물을 끓였는데, 아마도 지금 쓰고 있는 문장력의 바탕이 되었지 싶다. 공연히 객쩍은 말을 한 것 같아 민망하다.

작문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경험과 독서가 중요하겠다. 되짚어 보면 강원에서 5년간 경전공부를 필두로 송광사와 통도사 율원. 종단에서 설립한 은해사에 전문강사 양성을 위한 삼장 경학원에서 도합 5년 넘게 경전공부에 몰두했다. 특히 잠시 대만에서 어학연수를 했는데, 그동안 경전공부를 하면서 미진했던 문장구조에 대한 파악과 한·중 불교교류의 행사에 몇 번 참석하면서 직접 소통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이 컸다. 

경전강의는 10년 넘게 했다. 통도사 강원에서 공부하며 4~5년 차에 2년간 <초발심자경문><사미율의><치문>을 강의했으며, 해인사와 법주사에서는 강사 소임으로 <서장> <능엄경> <금강경> <기신론> <원각경>을 4년간 강의했다.

백양사와 선운사에서는 강주 소임으로 6년간 <치문>과 <화엄경>을 동시에 강의하며, BBS 불교방송에서 <원각경> 강의와 불교신문에서의 연재는 너무나 생소하면서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회향 때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하고자 한다.

[불교신문3615호/2020년9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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