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하대지와 두두물물이
모두 불보살의 현신이자
스승일지니, 그것들과 벗하여
함께 하는 것으로 산책만큼
좋은 것은 없으리라
그런 까닭에 신발 끈을 고쳐 맨 채
새벽 여명을 뚫고 길을 나서며
다시금 산책길에 오른다

진광스님
진광스님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걷는 것이 바로 최고의 약(藥)이다”라고 말했다. 조선의 명의로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은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낫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는 것이 좋다”고 설파했다. 또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진정으로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역설했다.

오랜 ‘수도승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온 지도 한 달여가 지났다. 그동안 무던히 걷고 또 걸으며 산책의 재미에 푹 빠져서 살아가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천변(川邊)의 산책로를 걷노라면 산을 휘도는 구름과 새벽안개, 그리고 여명이 아름답기만 하다. 오랜 장맛비와 폭염, 그리고 코로나19의 재확산에도 불구하고 산책은 지난 삶을 뒤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길과 희망을 꿈꾸게 한다.

천변의 화사한 수국과 해바라기 꽃, 그리고 달맞이꽃과 화사한 나팔꽂이 최선을 다해 피어 만발하다. 그리고 이름 모를 풀꽃들을 보노라면 세상에 꽃 아닌 것이 무엇인가 싶다. 밤과 대추나무도 천둥번개와 뙤약볕 속에서도 감내하며 실하게 잘 영글어간다. 또한 고니와 철새들은 마치 철학자나 수좌인양 사색과 명상에 잠긴 듯 팔대산인의 그림처럼 자리한다.

매일 천변을 따라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황금들녘과 아스라이 펼쳐진 산하의 경치를 만끽하며 걷는다. 그렇게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걷다가 ‘석천(石泉)’이라 이름 지은 석간수를 한 모금 들이키면 심신이 청량하고 행복한 기분이다. 무엇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언젠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삶과 마찬가지로 도보여행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고 말하며 “산책은 친숙한 것의 낯설음을 고안해낸다. 산책은 디테일들의 변화와 변주를 민감하게 느끼도록 함으로써 시선에 낯섦의 새로움을 가져다준다”고 이야기 했다.

우리는 모두가 ‘버림’과 ‘떠남’을 통해 낯선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그 예측 불가능한 낯선 세계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려면 그 낯설음과 용기 있게 마주해야만 한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 그 길에 한발 내딛어보자. 그리고 자연과 사람들을 자세히, 오래 바라보면서 그 안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 길 위에서의 시간과 정성이 모여 소중하고 아름다운 희망과 대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 

세상에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며 누구나 한번쯤은 방황하고 절망하는 법이다. 그 순간의 선택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매 순간의 일상일지라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없다. 오늘 이 순간이 세상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그렇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며 사랑하고 더불어 함께 할 일이다. 

온 산하대지와 두두물물이 모두 불보살의 현신이자 스승일지니, 그것들과 벗하여 함께 하는 것으로 산책만큼 좋은 것은 없으리라. 그런 까닭에 신발 끈을 고쳐 맨 채, 새벽 여명을 뚫고 길을 나서며 다시금 산책길에 오른다. 나그네는 길과 원수 맺지 않고 더불어 함께 하면서, 다만 가고 또한 갈뿐이다.

[불교신문3615호/2020년9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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