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슬픔이
우르르 나를 지나갔다
뽀얀 먼지처럼 슬픔이
천천히 가라앉고
오늘은
네가 지나간 길을 따라
고요가 나를 찾아왔다.

- 박성우 시 ‘고요가 찾아왔다’ 전문
 


어느 날 문득 슬픔이 찾아온다. 하늘 높이 먼지기둥을 세워 요란하게 지나간다. 혹은 뇌성과 번개를 동반하면서 우리의 삶 그 내면을 슬픔은 우르르 지나간다. 슬픔의 무리가 지나갈 적에 우리는 낙망하지 않을 수 없지만, 슬픔이 우리를 지나간 후에는 우리에게 다시 고요가 천천히 깃들기 시작한다. 마치 흙이 풀려서 몹시 혼탁해진 물이 서서히 맑음을 되찾듯이. 고요가 조금씩 깃드는 그 느린 시간은 우리가 회복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박성우 시인은 시 ‘눈부처’에서 이렇게 썼다. “어디 가지 않고 당신 안에서/ 반짝이는 눈부처가 되렵니다/ 그렇게 윤슬처럼 반짝이며/ 평생을 당신 안에서 살렵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이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일컫는다. 우리가 서로의 내심에 반짝이며 늘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슬픔도 머잖아 그치게 될 것이다.

[불교신문3615호/2020년9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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