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 성냄 분별 소멸시키는
유익한 법 전적으로 받들어
실천하면 이익과 행복 따라와

깨톡! 새학기 신입으로 들어온 총불이 법우다. “스님! 대학 와서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가보니, 저 자신을 꺾고 절대자에 순종하고 회개하라는 말씀과 훈련과정이 저를 억압하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얼마 전 본 영화 ‘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가 스친다. 12살, 요리를 사랑하는 소년 에이브는 공부보다 더 어려운 인생질문이 있었으니, ‘나의 정체성은 대체 무엇일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이기만 하면 종교전쟁으로 번지는 가족들. 팔레스타인계 무슬림인 아빠네와 이스라엘계 유대인인 엄마네, 에이브가 성장한 이곳은 뉴욕 브루클린의 길 한복판.

생일 축하노래도 민족별 버전으로, 이름도 이브라함과 아브라함 에이브라함 각자 부르시지만, 양쪽 모두 에이브의 사랑하는 가족임엔 틀림이 없다. 어느 날 가슴을 사로잡는 문구를 만나게 되니, 그것은 “맛이 섞이면 마음도 섞인다!”였다. 부모님 몰래 그 문구의 원천인 브라질 출신 거리의 퓨전 요리사 치코의 공유 주방을 찾아 나선다.

치코에게 요리사의 기본기와 바른 정신을 배운 소년은, 편협한 자기신념에 사로잡혀 대화 불능인 어른들과는 달리, 동서와 남북과 유대교와 무슬림의 재료와 맛, 요리법을 섞고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 모든 분별심의 두터운 상(相)을 녹여 내는 진정한 요리사로 성숙해간다.

경상도와 전라도 간의 정치색의 괴리, 불교와 기독교 사이의 근대적인 종교관 간의 불협화음을 지켜보며 자란 또 다른 에이브였던 필자는, 화쟁에 실패하고 풀 죽어 울먹이는 에이브에게 인생 스승 치코가 건네는 그 명답을 한껏 들이마셔 본다. “에이브, 다 화해시켜 내진 못할 때도 있어. 괜찮아, 넌 그냥 너답게 있으면 돼!”

“종교는 왜 필요한가요, 무엇이 진정한 신행(信行)인가요, 나는 이 고통 한복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라는 화두(話頭)와의 간절한 만남. 다양한 종교의 이름들 그 너머의 궁극의 만남! 여전히 ‘우리 교회에만 주님의 은총이 집중되고 있다’거나 ‘우리 절에만 기도 가피가 있다’고 주장하는 오늘날 제도권 종교들이 보이는 퇴행적인 행보로, 과연 이 시대의 에이브들에게 이것이 참된 종교라 가르칠 수 있겠는가?

‘나답게’ ‘주님의 자식답게’ ‘불보살님의 후예답게’란 대승(大乘)의 가치를 이미 이해했고, 그것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려는 용기 있는 대승보살 에이브들은, 지금 지구별 곳곳을 새로운 영성(Spirituality)의 길로 열어내고 있는 우린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법우! 그간 많이 답답하고 외로웠겠군요. 스님은 종교란 대형서점에 다양한 코너들마다 꽂힌 책과 같이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봐요. 경제가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재테크 코너로만 몰려가진 않죠. 누군가는 한 권의 시집이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해 주잖아요?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선 제자 수보리 장로와 대화하시며, ‘나의 법은 뗏목과 같아서, 강을 건너기 위해선 꼭 필요하나 일단 강을 다 건넜으면 버리고 가야지 짊어지고 갈 것인가?’라고 일깨우셨어요. 아함부 <깔라마경>에서 스승들마다 서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을 하는데 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깔라마인들에게 들려주신 부처님의 답변이세요.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권위 있는 남들이 그러더라고 해서 믿지 말고 참으로 스스로가 탐욕, 성냄, 어리석은 분별을 소멸시키는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이고, 지혜로운 자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며,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된다 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구족하여 머물러라.’

참으로 핵사이다(!) 같은 말씀이지요. 앞으로 총불 법회에서 꾸준한 공부로 체험이 깊어져가면 스스로 의심은 사라지고 자유로워질 거예요.”

스님들의 글이면 얼토당토않은 악플을 달고, 절 앞에서 ○○교회가 새겨진 물티슈를 나눠주며, 확성기로 그 아름답던 찬송가를 전혀 아름답지 않게 외치고, 전철에서 스님을 보면 달려와 공격적으로 전도를 해 대시는 시절이다. 그분들의 영적 탐진치(貪瞋痴)조차 품고 가야 할 ‘이웃’ 종교이리니. ‘네 이웃을 사랑하여’ 용기 있게 질문을 던지는 에이브들의 가을아침은, 늘 청명하다. 

[불교신문3615호/2020년9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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